부채 의식
원래부터 내 것이라 주장할 것이 무얼까
i
첫 직장은 통신사 지금 직장은 전자회사
언뜻 보면 전자공학을 전공했나 싶지만
내가 다닌 대학의 전신은 농과대학이야
역사 속의 자연자원대학 식량자원학과
ii
취업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요량으로
경영학과 복수전공에 2년을 더 보탰어
하지만 복수전공은 서류에서 탈락됐고
지푸라기 한 줌으로 물에 뜨긴 어렵더군
iii
결혼의 인연처럼 취업도 인연이 있는지
청바지와 넥타이는 똑같다는 기업에서
복수전공 구분 없이 지원서를 받아줬고
마지막 임원면접까지 운 좋게 통과했네
iv
웬일로 회사에서 보내주는 석사를 밟고
복귀하며 새로 생긴 로봇사업에 갔더니
전자회사로 이직하는 발판들이 되었지
더듬더듬 걸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어
v
생각하면 개연성 없이 이어져 온 과정들
거슬러 짚어보면 하나하나 자산이더라
예전 회계학원리 수업 시간에 배웠었지
자산은 자기 자본과 부채로 구성된다고
vi
내 삶에서 자산이라 생각되는 하나하나
자본으로 봐야 하나 부채로 보아야 하나
부채로 벌어들인 수익이 자본이라지만
원래부터 내 것이라 주장할 것이 무얼까
vii
대학교 등록금은 큰누나가 벌어서 댔지
2년 치 복수전공 등록금도 마찬가지였고
졸업해서 돈을 벌어 입고 먹고 썼던 것들
어머니 태에서 가져 나온 것 하나도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