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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권한 ㅣ 빈틈없이 꽉 찼지만 쓸모없이 여유없는

2024. 9. 22 (성숙)

by back배경ground
가계 사정이 썩 풍족한 형편은 아니지만
가정 평화를 위해 이모님 도움을 받는다
내가 퇴근이 늦어져 집 청소가 부실하니
일주일에 두 번 집안 정리를 도와주신다​

이모님을 대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이의 도움을 빌리는 자세를 배운다
아무래도 남의 손길이 내 맘 같진 않지만
그의 생각과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

반면 나는 이모님 방식에 각을 세워왔다
이모님 정리는 고도의 어지럽힘이라고
분류하지 않고 넣으시니 계속 섞인다고
달리 대안이 없으니 그냥 눈감기로 했다​

주말 오랜만에 아이 방을 정리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언짢음이 점점 올라왔다
물건과 쓰레기가 절묘하게 섞여있으니
모조리 뒤엎고 골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책장에서 빈 박스를 꺼내어 분리하면서
도대체 이런 걸 여기에 왜 두시지 싶다가
불현듯 이런 빈 박스를 버려도 되는 건지
직접 판단하실 수 없으시겠구나 싶더라​

주인은 버려야 할 것을 결정할 수 있지만
일손은 버려야 할 것을 결정할 수 없음을
내 안에 켠켠히 쌓여있는 버려야 할 것들
버리지 못하면 난 나의 주인이 아니구나​

내가 버려야 할 마음 내가 버려야 할 생각
어느 사이 바른 것과 교묘하게 뒤섞여져
빈 틈 없이 꽉 찼지만 쓸모없이 여유 없는
남의 집 일손처럼 내 안에서 살고 있는지​

(4+16+448=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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