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사정이 썩 풍족한 형편은 아니지만 가정 평화를 위해 이모님 도움을 받는다 내가 퇴근이 늦어져 집 청소가 부실하니 일주일에 두 번 집안 정리를 도와주신다 ii 이모님을 대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이의 도움을 빌리는 자세를 배운다 아무래도 남의 손길이 내 맘 같진 않지만 그의 생각과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 iii 반면 나는 이모님 방식에 각을 세워왔다 이모님 정리는 고도의 어지럽힘이라고 분류하지 않고 넣으시니 계속 섞인다고 달리 대안이 없으니 그냥 눈감기로 했다 iv 주말 오랜만에 아이 방을 정리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언짢음이 점점 올라왔다 물건과 쓰레기가 절묘하게 섞여있으니 모조리 뒤엎고 골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v 책장에서 빈 박스를 꺼내어 분리하면서 도대체 이런 걸 여기에 왜 두시지 싶다가 불현듯 이런 빈 박스를 버려도 되는 건지 직접 판단하실 수 없으시겠구나 싶더라 vi 주인은 버려야 할 것을 결정할 수 있지만 일손은 버려야 할 것을 결정할 수 없음을 내 안에 켠켠히 쌓여있는 버려야 할 것들 버리지 못하면 난 나의 주인이 아니구나 vii 내가 버려야 할 마음 내가 버려야 할 생각 어느 사이 바른 것과 교묘하게 뒤섞여져 빈틈없이 꽉 찼지만 쓸모없이 여유 없는 남의 집 일손처럼 내 안에서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