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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8. 2024
웃음 철새
못내 서운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는지
옛날 면목동에는 기역자 집들이 많았다
긴 변에는 방이 두 개 작은 변에는 방 한 개
긴 변에는 주인집이 작은 변에는 셋방이
우리는 주인이었지만 작은 변에 살았다
녹슬어진 철문은 겉보기로만 닫히었고
자그마한 마당에는 화장실과 목욕탕이
그 위쪽에는 옥상이 옥상에는 단칸방이
그리고 전깃줄이 늘어진 처마가 있었다
하필이면 그 처마로 이사 온 제비 두 마리
전깃줄을 반석삼아 제비집을 지었더라
겨우내 꿈꾸었을 남쪽나라가 여기라니
아파트 당첨된 듯 애타게 기다렸을 텐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한여름날 장마철에
구렁이 미끄러지듯 빗물이 흘러들더니
외줄 위에 위태로이 지어졌던 제비집이
숨겨놓은 알과 함께 하룻밤새 무너졌다
그날 아침 줄에 앉아 그렇게도 울어댔지
제비 두 마리 울음소리가 울음 소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다음 해
반갑게 찾아왔지만 집을 짓지는 않더라
그 이듬해부터는 보이지 않았던 제비들
못내 서운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는지
다른 남쪽나라로 저멀리 가버렸나 보다
그리고 더 이상 들리지 않던 울음소리들
지금은 사라진버린 길었던 여름 장마철
지금은 돌아오지 않는 철새 제비 두 마리
지금은 무너져내린 단칸 방 옥상밑 처마
지금은 들리지 않는 골목길 웃음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