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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ㅣ 누군가 나에게 얼마나 홀대를 당했을까

작업일 미상

by back배경ground
불현듯 아내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한다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는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해서 먹고
나는 아무 음식이나 보이는 대로 먹는다​

아내는 보통 이상으로 입이 짧은 편이고
내게는 웬만한 맛이면 맛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식들을 좋아하지만
특별히 먹고 싶고 생각나는 음식은 없다​

눈썰미 좋은 해나가 이런 나를 읽어냈다
아빠는 커피를 좋아하누나 하고 말이다
집에서 유일하게 찾는 게 커피였나 보다
하긴 아내도 진작 커피머신을 사주었지​

커피가 쓰다며 커피를 안 마시는 아내는
여기저기서 이맛저맛 원두를 사다 준다
매번 커피맛이 맛있는지 아닌지 물으며
좋아하면 이것저것 찾아보는 거라 한다​

누구보다 먹는 것에 칭찬받는 사람으로
웬만하면 맛있다고 말하는 자존심으로
아무 원두면 어때 다 커피맛이지 했는데
이번 원두는 영 엉망이었다 쓰기만 하다​

그래 몇천 원 차이가 달리 나는 게 아니야
옆에 있었던 테라로사를 샀어야 했는데
그러다가 문득 커피머신을 열어봤더니
보송보송 핑크빛의 곰팡이가 피었더라​

커피가 나에게 얼마나 홀대를 당했을까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돌보질 못했네
좋아한다면 틈틈이 들여다봐야 했는데
아무 맛이나 좋다고 으스대⁠기만 하다니​

(4+16+448=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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