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감독의 뼈 때리는 충고
"좀벌레 알지? 좀벌레... 야금야금 좀 먹는 그 벌레 말이야."
그날은 폭염이 계속되던 어느 여름의 한낮이었다. 평양냉면을 한 그릇 뚝딱 하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선 '아아'를 한 잔 마시던 참이었다.
경력이 꽤 다채로운 그 영화감독은 맞은편에 앉아 홀짝홀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화법으로 말했다.
"다들 그 정도 직장 생활했으면 알 거 아냐? 아직도 조직을 몰라? 이런!
튀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버티라고.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순 없잖아?
좀벌레... 좀벌레가 되어야지."
때론 누군가 내뱉은 '궤변'이 누군가의 가슴엔 '송곳'처럼 꽂히기도 한다. 훗날 돌아보니 그때 그 감독의 말이 그랬다.
매달 같은 날짜에 어김없이 통장에 따박따박 월급을 꽂아주는 회사란, 무릇... 그 월급으로 직원들을 잘 길들이고 길들여 원하는 대로 쓰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쩌면 잘 몰랐다.
인생을 한 참 더 산 그 감독의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생리쯤은 알지 않느냐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게 최선이라고. 그렇다고 조직의 부당함에 눈까지 감을 수 없으니 좀벌레처럼 야금야금 그 부당함을 갉아먹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일종의 위장전술.
결과적으로 나는 실패했다. 좀벌레가 될 수 없었다.
나름 전문직으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고 그 밑바탕이 되어 준 곳이 회사라는 걸 알았지만 웬일인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은 조직, 같은 사람들,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 같은 찝찝함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지쳤다, 힘들다, 지겹다 따위 단어론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침잠의 상태가 1년 넘도록 계속됐다.
어쩌면 조직 안에서 한 인간이 버텨낼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것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처음 듣고는 코웃음을 친 '좀벌레 위장전술' 조차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상태로 1년 즈음 지난 어느 날. 마침 당직을 하는 날이라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머물고 있던 그 해 6월 25일의 밤.
한쪽에서 무리가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한 부서의 담당자와 그 부서의 장에게 하달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온갖 주문에 그 부서는 물론 옆 부서까지 우왕좌왕 옥신각신을 벌이는 모습을 목격한 그날의 밤. 나는 그곳에서 역한 '비린내'를 맡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코가 아닌 머리가 맡은 그 냄새는 분명 비린내였으니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좀벌레가 되어야 한다는 삶의 명제도 더는 중요치 않았다. 좀벌레조차 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 그 비린내를 맡은 날로부터 정확히 3개월이 지난 뒤 나는 사표를 냈다. 남들 보기엔 그럴듯한 회사, 잘 쌓아가던 커리어를 일단 멈춰야 했다.
마흔한 살, 자발적인 백수는 바로 그 비린내로부터 시작됐다.
얼마 뒤.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영화 '특별시민'을 방영하던 채널에서 손이 멈췄다. 몇 년 전 이미 봤던 영화이고, 제작 과정도 익히 알고 있던 익숙한 작품인데도 채널을 돌리고 싶지 않던 찰나. 하필 이런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3선을 노리는 거물 서울시장의 선거 운동에 동참한 청년 전략가(심은경)가 지략 대신 범죄가 판치는 선거판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겠다고 선언하면서 던진 한 마디. "이 곳에선 비린내가 나요."
맞은편에 앉아 그 말을 듣던 노련한 정치부 기자(문소리)의 일갈... "너한텐 안 날 것 같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