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상담이란 게 불가능한 일
이 나이쯤 되면 알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사람을 사귈 때 '만나온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 사람은 오래 겪어봐야 진짜 모습을 안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관계가 '사랑'일 때는 이런저런 공식 따위 불필요하다. 남녀 사이에 싹트는 사랑의 감정은 애초부터 어떤 테두리로 규정할 수 없는 일이니까.
얼마 전 연애를 시작한 친구가 있다. 스무 살 때부터 봐 온 친구이기에 그녀의 연애사는 뜻하지 않게 나의 지난날의 한켠을 차지한다.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고 굳이 묻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알게 된 그녀의 연애사는, 꽤 오래 이어진 풋풋한 사랑일 때도 있었고 마음에 품은 속내를 다 꺼내 보이지 못해 더 애틋한 관계일 때도 있었다. 이후 몇 번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을 겪었다.
마음 넓고 따뜻한 친구이기에 좋은 인연을 만나리라고 믿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와 겪은 소소한 차이를 얘기해올 때면 '인연이 아닌가 봐'라고 다독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을 만날 거라고도 말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연하의 남자 친구가 생겼다. 나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통화로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인데도, 친구는 남자의 등장에 대해 한동안 함구했다. 몇 달 동안 자신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보이지 않게 챙겨줬던 그 남자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받고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마흔 살 넘어 연하의 남자 친구와 만남을 시작할 때에 고민이 없을 순 없다. 비단 연하남과의 사랑뿐이랴. 연애를 막 시작할 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돌아가 '미칠 것 같은' 순간은 다들 한 번쯤 겪어봤을 테니까.
사랑에 풍덩 빠진 사람들이 그렇듯, 친구도 내게 이런저런 고민과 상황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일종의 연애 상담이었다. 평소 같으면 선뜻 '마음 가는 대로 해'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만남에 신중하려는 친구의 마음이 내게도 그대로 느껴졌고, 지극히 현실적인 잣대를 갖고 속으로 조건을 따져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뭐라고 조언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태가 내게 불러온 뜻밖의 깨달음도 있다.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됐군'이란 자각이었다.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연애가 '상담 불가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막 시작해 상대에 대한 핑크핑크 감정이 마구 솟구치는 사람에게 '조언'이란 게 과연 가능한 영역일까. 사랑의 감정에 균열이 일거나, 그로 인해 헤어짐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고? 지극히 복잡다단하고 개인적인 연애 감정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는 절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니까!
물론 '상담 불가 영역'이란 구분이 그 관계에 대한 무관심까지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친구가 느끼는 감정과 고민을 듣는 데에 더 집중했다. 때때로 '선택은 너의 몫'이라는 말만 덧붙였다. 간혹 교과서적인 답변이 정답일 때도 있다. 친구는, 그 자신보다 더 따뜻하고 세심한 남자 친구와 단단한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연애상담만큼이나 나는 이직상담 역시 불가능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소리 소문 없이'가 핵심인 이직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행위가 내포한 무시무시한 리스크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언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고민만 깊어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소문만 무성하게 퍼지는 지경에 이르면 발목 잡히기 십상이다.
첫 직장에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할 때였다.
동종 업계인 데다, 지금 회사의 구성원들과 옮길 회사의 구성원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 탓에 나는 이직을 진행하면서 매일 살얼음판을 걸었다. 경력직 이직이라 서류 단계는 형식적인 절차로 끝났고, 문제는 경영진과의 면접. 평일 오전 11시로 결정됐다. 다니던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휴가를 냈다.
아무도 내가 거짓 핑계를 휴가 사유로 썼다는 걸 의심하지 않았는데도 몹시도 조마조마했던, 휴가신청서를 제출한 바로 그날 저녁. 하필 부서 회식이 잡혀있던 그날 저녁. 며칠 뒤 있을 면접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회식장소 근처 백화점에서 평소 입지도 않는 정장 스타일의 재킷을 구입한 그날 저녁. 그 재킷이 든 쇼핑백을 들고 회식 자리로 간 그날 저녁. 맞은편에 앉아있던 '촉 좋은' 여자 선배가 무심한 듯 날카롭게 쇼핑백에 적힌 브랜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른 회사 면접 보니? 왜 안 입던 옷이야."
의심할 필요 없이 그 선배의 말은 웃자고 던진 농담이었다. 당황한 건 나였다. 당황하니 되려 너무 냉정한 말투가 훅 튀어나왔다. '수선한 옷 찾은 거예요!'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첫 이직이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나의 비밀작전이 누구에게 들킬세라 한 달 가까이 벌인 혼자만의 007 작전. 훗날 나의 이직이 공개된 이후 그 선배는, 마치 다 안다는 듯 '이해한다'는 말로 떠나는 나를 응원해줬다. 일찍이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한 그 선배는 '혼자만의 007 작전'을 나보다 먼저 겪은 경험자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이직 제안이 몇 차례 있었다. 어떤 제안은 듣자마자 'NO!'라는 답이 나왔고, 어떤 제안은 아리송해서 나를 헷갈리게도 만들었다. 그럴 땐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알리고 조언을 구해보기도 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선택은 결국, 내가 해야 했다.
같은 일을 하는 후배들 가운데 종종 이직 제안을 받고 조언을 구하고자 상담해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처음 이직 제안을 받자마자 들었던 생각, 그대로 따르면 된다고. 남의 조언은 그리 중요치 않다. 이직할지, 말지, 이미 당사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본능이 정해준다는 점에서... 이직과 연애는 조금 닮은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