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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봉녀 Aug 21. 2021

채용 제안 거절했더니 닥친,
근본 없는 허무함

선택은 후회하지 않기의 연습

역시 나는 놀 팔자가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OOOO의 OOO입니다."


유명한 콘텐츠 플랫폼사였다. 회사 다닐 때 내 업무 파트너사 중 한 곳이기도 했기에 전화를 받고선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편안하고 익숙하게 답했다.


"제가 얼마 전 퇴사를 해서요. 담당자가 바뀌었는데, 바뀐 담당자의 연락처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건너편에선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나에게 연락을 해온 목적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인 즉. 


자사의 모 부서에서 적합한 이력을 가진 경력직 인물을 채용할 계획인데 혹시 의향이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사표를 내고 몇 달째에 접어든 나는 자유로운 시간이 축복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일이 없는 삶이 문득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나날들에서 예상치 못한 채용 제안을 듣는 순간, 거두절미 내 머릿속엔 여러 생각이 마구 스쳤다.


OOOO라고?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잖아.

연봉도 아마... 업계 톱 수준일 텐데.

잘 나가는 회사니까 일은 당연히 많을 거야.

가만가만! 그런데 담당 업무가 뭐라고?

아...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그래. 어차피 사표 내고 좀 쉬려고 했잖아. 이번 제안은 기회가 아닌 거야.

그래도... 회사도, 연봉도,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머릿속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았다. 제안을 받고 얼마간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마침 그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하는 이들이 꽤 있었기에, 모르는 척 그들에게 슬쩍 컨디션을 묻기도 했다. 대체로 '좋은 회사', '일해볼 만한 회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정을 해야 할 순간.


나는 제안을 거절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인 선택이었다.


남들 말처럼 일해볼 만한 곳이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플랫폼 회사라는 것도 꽤 매력적인 조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담당해야 할 업무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간의 회사 생활이 불러온 끝 모를 희의감에 대책 없이 '자발적 백수'를 선택했지만 사표를 내면서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해보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다. 남들도 욕심내는 회사라는 것에 끌려 원하지 않는 업무를 맡는다면, 또다시 지지부진한 오피스 라이프가 반복될 것만 같았다.


'선택'은 후회하지 않기의 연습인 것 같다.


얼마 뒤 채용 담당자에게 정중히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랜 고민 끝에 사표를 냈고, 그간 해온 직업에서 한 발 벗어나 다른 일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는 사실도 알렸다. 채용 담당자는 내 말을 찬찬히 듣더니 "참 신선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여러 함의를 품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어차피 내 인생인데 남들과 다르게 살면 좀 어때...라고, 이렇게 쓰지만... 사실 그런 결심을 올곧게 실천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내 의지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벗어날 때면 어김없이 스멀스멀 불안함이 솟아오른다.


예상치 못한 채용 제안을 받고 잠시 흥분했다가
 이내 거절한 뒤에 닥친 감정은
 '근본 없는 허무함'이었다. 

백수인 처지에 이런 제안을 거절해도 되나, 원하지 않는 일이니 거절할 수 있지만, 혹시 이대로 시간이 흘러 영영 일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아니야 곧 또 좋은 기회가 올 거야...!


정말이지 백수의 삶이란, 일희일비의 연속 그 자체이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와인을 따서 한 잔 마시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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