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하게 됐어요?
산을 좋아한다. 봄날 연한 초록이 점점 무성해지는 그 숲을 좋아한다. 짙어지며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아지는 여름의 초록빛을 사랑한다. 그 빛이 가을을 지나며 미련 없이 흙으로 떨어지는 의연함에 반하고 만다. 그리고 비어있는 채로 찬 바람을 견디고 흰 눈을 맞아 고독해지는 산을 좋아한다. 그렇다. 모든 계절의 산을 나는 좋아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산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직도 기억나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집 뒷산에서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입을 삐죽거리고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뭔가 상당히 불만이 있어 보이는 사진이다. 이유인즉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따라 나서 심통이 난 것이다. 아버지는 산을 워낙 좋아하셔서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산을 가셨다. 이사를 가면 집 주변에 약수터가 있는 등산로를 항상 찾아내시고는 주말마다 산을 다니셨다. 그래서 싫든 좋든 아버지를 따라 자주 산에 갔다. 가서는 약수를 떠서 내려오기도 하고 산 중턱에 있는 철봉을 하면서 놀기도 했고 숲을 오가던 다람쥐를 보며 신이 나서 재잘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주 가기 싫은 날엔 그렇게 심통이 나서 억지로 따라가기도 했지.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산을 오르다가도 정상에 올랐을 때는 언제 심통이 났었나 싶게도 발아래 펼쳐지는 멋진 풍경에 반해 슬며시 웃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요즘에는 무릎이 예전같이 않으시다며 산에 자주 가시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산을 가까이하신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산을 자주 다녀서일까. 산에 가면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 편안함은 일상에서 지치고 힘들 때 나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말없이 안아주는 산.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줌에 있어 계산이 없는 산. 모든 것을 품어주는 산이기에 좋아할 수밖에.
다행히 나만큼 산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많은 산을 다녔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는 남편과 함께 둘이서 백패킹을 가거나 아이들과 함께 트레킹을 하곤 한다. 그리고 예전의 내가 그랬듯 산정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분명 산을 오르다 보면 힘든 순간이 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한 발짝 옮기기도 힘든 순간이 온다. 하지만 힘든 순간을 견디고 정상에 오르고 나면 오직 산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찾아온다. 힘든 순간을 견딘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산정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능선의 아름다움, 작디작게 보이는 집과 건물, 도로와 차들을 보며 소소한 걱정거리들을 툴툴 털어낼 용기를 얻는 것이다.
꼭 산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산의 둘레길을 걷거나 숲 속 캠핑장에서 하룻밤 묵으며 산의 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봄의 산, 여름의 산, 가을의 산, 겨울의 산 모두가 나에겐 선물이었다. 난 그 멋진 선물을 매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본다. 아무래도 산은 너무 좋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