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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19. 2019

강화 함허동천 백패킹 도전기

- 백패킹은 야영에 필요한 장비를 등에 지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둘째 육아휴직도 끝나가고 3월에 복직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육아에서 벗어난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다.

우리 백패킹 해볼까?

평소에 백패킹으로 굴업도 등의 섬들을 다닌 이웃 블로거들의 야영 생활을 보고 내심 한번 해보고 싶었던 차였다. 백패킹은 어린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캠핑이기에 육아에서 벗어난 하루의 시간을 백패킹을 해보는 것으로 결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함허동천 야영장은 초보 캠퍼 시절에 다녀간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때는 장비를 함허동천 야영장까지 리어카로 옮겨 캠핑을 했었는데 이번엔 배낭에 텐트며 침낭이며 그날의 식량 등을 넣고 걸어서 가야 한다.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겨두고 야영장에 도착하니 해가 반쯤 기울어있었다. 부지런히 야영장까지 걸어야겠구나 싶다. 배낭을 메고 걷다 보니 눈이 쌓인 겨울인데도 몸이 훈훈하게 데워졌다.

아영장에 펜타 쉘터를 치고 간단히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보니 빈 나뭇가지들 사이로 황금빛 시간이 찾아들었다. 겨울의 해는 서서히 지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는 이렇게도 보송하고 예쁜 겨울눈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야영장 한 바퀴를 휙 둘러보았는데 계절은 겨울이고, 평일 오후라 그런지 딱 한 팀을 제외하고는 데크들이 거의 다 비어있었다. 친정에 맡기고 온 두 아이들이 생각나 갑자기 몹시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이들도 없으니 텐트 안에서 실컷 책을 읽기로 했다.

 

잠깐 리액터를 켜고 따뜻한 물을 데워 차를 마셨다. 해가 지면서 기온이 떨어져서 몸을 따뜻하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리액터는 극한의 날씨나 환경 속에서 백패커들이 물이나 음식을 데우는데 쓰는 버너다. 리액터로 물을 끓이면 물이 순식간에 끓어서 간단히 음식을 조리하거나 뜨거운 물을 활용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화력이 강해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우리 침낭도 리액터에 살짝 데어 구멍이 나서 오리털이 빠져나오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아무튼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 그래도 동계 캠핑 시에 이만한 아이템이 없는 것 같아 아직까지 늘 곁에 두고 잘 쓰고 있다.


전기도 안 되는 곳으로 야영장비를 등에 지고 와서 처음으로 맞은 백패킹의 밤. 우리는 온수 주머니를 꼭 끌어안고 각자 침낭 안으로 들어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온수 주머니와 핫팩과 오직 자신의 체온으로만 자신을 데울 수밖에 없었던 그날 밤의 기억이 생생하다. 굳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신의 배낭만큼의 짐만 있어도 겨울밤 하루를 보내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 사실은 신선한 깨우침이었다.

다음날,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푸르스름한 빛이 쉘터에 번지기 시작했다.

아침도 간단히. 꿀호떡을 따뜻하게 구워 커피와 함께 먹었다. 이날 이후로 마트에 놓인 꿀호떡을 보면 언제나 함허동천이 떠오른다. 이거 불에 구워 먹으면 참 맛있는데, 거기다 아메리카노를 함께 마셔야 해.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에 우리는 짐을 정리했다. 우리가 오기 전처럼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 다음 캠퍼를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에티켓이다. 그렇게 침낭을 접어 배낭에 넣고, 쉘터를 접어 넣고, 매트를 배낭 끝에 매달아놓고 나니 아주 간단하게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는 함허동천에서의 첫 백패킹을 기념하기 위해 배낭들을 나란히 두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언제 또 이렇게 백패킹을 해볼 수 있을까?
아이들이 더 커서 제 인생의 몫만큼의 배낭을 메고 올 수 있을 때 그때가 되지 않을까?

 뭔가 거창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 몇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첫 백패킹. 강화도 함허동천은 이런 소소한 깨달음을 얻기에 참으로 멋진 곳이었다. 우리 같은 초보들이 백패킹의 맛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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