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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Jan 31. 2020

장작만 세 박스 태웠던 한겨울 캠핑

고요한 겨울 숲의 안부를 묻다. 안성 서운산 자연휴양림

작년엔가 국립 자연휴양림과 시립 자연휴양림을 동시에 검색해서 예약할 수 있는 숲나들e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시립 자연휴양림은 해당 홈페이지에 각각 접속해서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기도 해서 주로 국립 자연휴양림만 다녔는데 통합 홈페이지 덕분에 시설 좋은 시립 자연휴양림도 종종 이용하게 되었다. 안성 서운산 자연휴양림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서운산 자연휴양림은 안성 서운면과 진천 백곡면 사이, 차령산맥의 유순한 능선 사이에 자리해 재작년 봄에 문을 연 곳이다.  


엄마, 화장실이 엄청 반짝반짝해.

비교적 최근에 개장한 휴양림이라 그런지 화장실에 다녀온 아들이 깜짝 놀랐을 정도로 시설이 무척이나 깨끗하고 좋았다. 온수도 콸콸 나올뿐더러 온수 샤워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캠핑장에 머무는 동안 지켜보니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오셔서 청소를 하시더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휴양림이지만 산불 조심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기에 장작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불 조심 기간 2월 1일 ~ 5월 15일, 11월 1일 ~ 12월 15일)

서운산 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과 카라반도 있었고, 1 야영장부터 3 야영장까지, 약 30개 정도의 오토캠핑 사이트가 있었다. 우리는 그중 상단에 위치한 3 야영장에 머물렀다. 텐트를 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계곡을 따라 아래로 이어진 휴양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비어있는 나뭇가지 위로 걸린 파란 하늘이 곧 노을의 시간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다 보니 해가 지기 전에 어서 장작을 사 와야겠다 싶다. 휴양림 내에는 매점이 없어 장작은 나가서 사야 한다고 했던 관리소장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작은 휴양림 앞에 있는 가마골이라는 식당에서 팔고 있었다. 가마골 사장님은 저녁 9시까지는 문을 열고 있으니 장작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러 내려오라고 하신다. 일단 한 박스를 차에 싣고 야영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장작에 불을 피웠다. 참나무 장작을 어슷하게 쌓아두고는 오일을 살짝 두르고 토치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내 장작에 불이 붙는다.

장작에 어느 정도 불이 붙었다 싶을 때 장작을 좀 더 넣는다. 그러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장작을 바라보다 데워진 얼굴은 하늘을 보며 식혀주곤 했다. 고개를 들면 내려오는 차가운 산바람이 얼굴을 만져주었다. 별은 모두 27개, 산바람에 얼굴을 식히는 동안 그렇게 별을 세면서 다시 화로의 온기를 쬐기를 여러 번. 마지막 장작을 태울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있었다.

다음날 아침은 된장찌개와 계란 및 소시지. 캠핑장에서 먹는 음식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꿀맛이다. 특히 캠핑용 압력밥솥에 밥을 하면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누룽지를 조금만 더 달라고 난리다. 금방 지은 밥에 그렇게 맛있게 한 끼를 먹고 나면 하루 종일 든든하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 설거지는 잠시 미루고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지난 캠핑 때 일회용 드립백을 사두었는데 집에서 원두만 미리 갈아오니 커피 마시기가 더 수월해졌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포근한 겨울 햇살에 커피는 마시기 딱 적당한 온도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침 해를 받으며 겨울을 버티는 나무와 풀들에게 안부도 물어보았다.

지내기는 괜찮은 거니?

들리는 건 빈 가지를 지나는 바람 소리, 얼음이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 홀로 나온 산새 소리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들이 얼마나 평온하던지. 어쩜 겨울 숲은 내 걱정보다도 잘 지내는 것 같다.

오후에는 가마골에 가서 참나무 장작 두 박스를 더 사 왔다. 한 박스는 오후에, 남은 한 박스는 밤에 태울 생각으로. 겨울이지만 텐트 안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찬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장작을 피우며 불을 바라보고 싶었다.

밤에 태울 장작 박스는 간이 테이블이 되었다. 하얀 법랑 머그에 맥주 한 캔을 반씩 나눠 마시고 우리는 따뜻한 모닥불 옆에서 온기를 쬐었다. 코끼리가 그려진 하얀 법랑은 치앙마이 와로롯 마켓에서 산 것으로 이번 캠핑에 처음으로 가져가 봤다. 더운 나라에서 온 법랑은 이런 추위가 처음일 테지.

불이 사그라질 때마다 아이들은 심화소생술이라며 주변의 잔가지를 찾아와 넣곤 했다.

밤이 내리자, 우리는 세 번째 장작 박스를 열고 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마지막 장작이 탄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은 온기를 쬐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옆 데크에서는 한 때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그 노래를 끝까지 듣기 위해 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음 예전 노래인데 포지션의 I love you. 오랜만에 들으니 참 좋더군요.)


겨울의 캠핑은 참 신기하다. 그저 숲에서 머무르며 온기를 쬐었을 뿐인데 마음이 이리도 말랑말랑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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