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숲 Apr 30. 2020

뜻밖의 스노우 캠핑

갑자기 떠난 겨울 캠핑에서 눈을 만났습니다

 겨울 속에도 가끔 봄볕같이 따뜻한 날이 찾아들곤 한다. 그럴 때가 마침 가족이 모두 쉬는 휴일이라면, 차에는 아직 지난 늦가을의 캠핑 장비들이 잠들어있다면, 꼬마들의 컨디션마저 좋을 때, 슬슬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이 피어난다. 그럴 때 주저하지 않고 그냥 캠핑을 가도 될까?

겨울에 캠핑을? 햇살 좋은 겨울이니까 캠핑을.


 겨울에 즉흥적인 캠핑을 갈 때는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갑작스럽게 마음을 먹기까지 따뜻한 햇살의 역할이 컸으니 그 햇살이 저녁 어스름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동해서 텐트를 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햇살이 남았다면 자투리 햇살을 받으며 겨울 숲을 따뜻하게 산책을 하면 된다. 그렇게 장비를 실은 차 안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캠핑장을 찾아보다가 우리는 강화 고려산 자락에 있는 한 캠핑장으로 떠났다.


 신기하게도, 동네에서는 눈이 없었는데 캠핑장에 도착해보니 하얀 눈 세상이었다. 나뭇가지에는 눈이 이미 녹고 언덕과 길들만 하얀 눈으로 덮인 것으로 보아 눈이 내린 지는 며칠이 지난 것 같았다. 아무리 봄볕 같은 햇살이라 해도 겨울의 빛이 산 자락 캠핑장에 드나드는 시간은 짧은가 보다. 그래서인지 산은 꽤 오래고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덕분에 새하얀 빛이 도는 소복한 눈밭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뽀도독뽀도독 눈을 밝으며 눈밭을 거닐던 꼬마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갔지만 아직 저녁이 오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엔 눈밭 산책이 꽤 즐거웠다.

다섯 살 꼬마는 눈밭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두 살 된 꼬마는 이렇게 많은 눈을 처음 보았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눈을 만난 기쁨에 추위도 잊어버리고 새하얀 눈밭을 하염없이 걷다가 뒹굴다가 만지고 놀았다. 아이는 더욱 아이가 되고 어른도 아이처럼 되었다. 꼬마들과 한참을 눈을 가지고 놀다 방수 장갑마저 제법 축축해진 것을 알았을 때 진짜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눈에서는 푸른빛이 돌았다. 푸른 눈은 진한 청색이 되더니 그만 다시 하얗게 되고 밤새 은은하게 빛났다.


따뜻한 텐트 안에서 고기 한 점 익기를 기다립니다

 저녁이 내리고 나자 선득선득한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로 돌아와서는 뜨끈한 육수를 내서 샤부샤부를 끓이고 강화로 들어가는 길에 샀던 한우를 구워 먹었다. 마침 불판이 없어 간이 토스터기에 고기를 구워봤다. 테이블 가로 옹기종기 모여든 꼬마들에게 고기를 잘라서 한 입씩 먹여주고는 다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싸락 싸락 눈발이 살짝 날렸다. 하얀 텐트 위로 거뭇한 눈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던 그날 저녁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달콤한 티타임으로 캠핑을 마무리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만난 행복은 힘이 세다. 오래 기억에 남아 언제든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을 데워준다. 그날 겨울 캠핑을 생각하면 마음이 노곤 노곤해져 오는 까닭이다. 겨울밤은 생각보다 짧았고(아마도 고기를 느릿느릿 구워 먹어서 더 짧게 느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갑자기 떠난 캠핑이라 하룻밤만 머문 후에 캠핑장을 떠나려니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돔 텐트는 겨울바람을 막아주던 아늑한 보금자리였고, 가루 같던 눈 속에서 우연히 만난 겨울 산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막상 떠나보니 꼬마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저만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그 시절 다섯 살 꼬마에게는 상상의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자주 어울리곤 했습니다.) 만일 꼬마들이 그때 눈과 캠핑을 힘들어했다면 그날 이후로 겨울 캠핑은 접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행히 꼬마들이 새하얀 눈밭에서 신나게 놀고 잘 먹어 준 덕에 아직까지 겨울에도 아랑곳 않고 캠핑을 하러 떠난다. 그때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고슬고슬한 눈이라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이전 13화 캠핑 불멍을 즐기고 싶을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