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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22. 2019

캠핑 불멍을 즐기고 싶을 때

- 장작불을 피우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계곡물 소리도 선득하게 들려온다. 그럴 땐 화로대 옆에 장작더미 쌓아두고는 불을 피우고 싶어진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거리며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참 좋다. 숲의 해는 빨리 저물지만 캠핑 화로의 온기는 밤까지 이어진다. 가을밤이면 등에 살짝 서리가 앉은 것 같아도 불 앞을 쉽게 떠나기가 아쉬울 정도로 장작을 피우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찾는 자연휴양림에서는 화로대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캠핑 불멍을 즐기고 싶을 때는 오토캠핑장을 찾는다. 특히 거리에 노란 잎들이 흩날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따뜻한 청귤차가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에는 더욱 불멍이 그리워진다.

 이날도 그런 날이었다. 촘촘하게 잎들을 엮어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플라타너스. 무심하게 떨어졌던 그의 손들이 바스락거리며 사라지던 늦가을의 휴일 아침이었다. 시간은 언제나 공평하게 지나가며 힘들었던 것도 좋았던 것도 덮어주었지만, 한 해의 마지막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냉기처럼 훅 들어왔다. 그래서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매점에서 장작 한 더미를 사 와 불을 피웠다. 캠핑장 곳곳에는 나뭇가지들과 마른 솔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잔뜩 주워와서는 장작 옆에 쌓아두고 불이 사그라질 때마다 한 줌씩 넣었다.

샤부샤부에 우동 사리까지 넣어 일찍 저녁을 지어먹고는 우리는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왔다. 거의 일 년 만에 화로대에 불을 피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불멍 시간을 제대로 즐기겠다는 무언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밖은 어느새 파란색이 되어있었다. 해가 많이 짧아졌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렌턴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사그라지던 화로대의 불씨를 살리기 시작했다.


 습기가 있는 장작은 태우면 불도 잘 붙지 않을뿐더러 매캐한 연기가 무척 많이 나온다. 그리고 장작에 눈물처럼 수분이 맺히며 완전히 타지 못한 채 꺼져버린다. 반면에 잘 건조된 장작은 불꽃이 닿으면 다정한 소리를 내면서 아름답게 타오른다. 그러다 붉은빛을 내며 숯이 되었다가 다 타고나면 고운 재로 변하고 만다. 장작 한 개가 그렇게 가고 나면 다음 장작이, 그리고 그다음 장작이 그렇게 차례대로 타는 것이다.

이 불이 캐스퍼 같아. 말도 하고 계란 프라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은 불꽃을 보면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캐스퍼를 떠올렸다. 하울의 심장이었던 캐스퍼.

캐스퍼가 꺼지면 하울도 힘을 잃었었지. 하울은 왜 심장을 캐스퍼에게 주었을까?
우리 마음에도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심장이 뛰고 있는 거야?

 장작불을 계속 보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그러다 잠이 오기 마련. 졸려하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마지막 장작이 타오를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마지막 불꽃이 사그락 거리는데,  세상엔 우리만 있는  같이 적막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장작 소리, 가끔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좀 전까지 마셨던 차는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이제 이 불놀이도 끝날 시간이야 라고 이야기했고, 마지막 남은 불꽃도 이내 꺼지고 빨갛게 변한 숱과 하얀 재만 남았다. 끝이 있어서 더욱 즐거운 것은 분명해.


 늦가을, 차갑게 훅 들어왔던 불안은 장작불에 함께 타버리고, 그날 밤 내 마음엔 더 이상의 차가움은 남지 않았다. 오랜만의 불멍이 온기를 전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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