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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18. 2019

청량한 여름의 기억, 삼봉 자연휴양림

- 한 여름에도 발목이 시렸던 계곡물에서 청량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삼봉 자연휴양림은 여름에 가기 좋은 곳이었다.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좁은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동차 계기판의 기온이 1도, 2도씩 내려가는 게 보인다. 숲이 깊어 그런지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아 쾌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손을 내밀어 숲의 공기와 악수를 했다. 여름 숲은 무성하게 커지고 있었고 햇살에 반짝거리는 계곡 물들이 모여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삼봉 자연휴양림은 강원도 홍천의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세 개의 봉오리 사이에 있는 천연림에 조성된 곳으로 깊은 계곡에는 1 급수에서만 산다는 열목어와 도롱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휴양림에 도착하면 우리 데크를 먼저 확인한다. 이번엔 가장 끝 데크라서 주차장에서 데크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여러 번 주차장과 데크를 오가면서는 다음에는 장비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캠핑을 다니다 보니 실제로 짐이 조금씩 줄어갔다. 그러다 겨울이면 다시 짐이 늘긴 하지만.


깊은 숲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휴양림 캠핑의 큰 매력이다. 부지런히 집을 짓고 나니 초록 한가운데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의자는 어서 여기 앉아 두 눈으로 녹색을 모아 보라 한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집을 짓고 난 후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우리는 저녁을 지어먹었다.

언제 계곡에 들어갈 수 있어요?

아이는 이렇게 묻고는 숲이 비에 젖는 걸 가만히 쳐다보았다.

비가 그치고 나니 데크 앞 계곡가에는 하얀 물안개가 피어났다. 물안개로 계곡은 무척이나 신비로운 곳이 되었다. 우리는 안개 너머에 꼭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로 설레며 계곡에 들어갔다. 그러나 금방 물가로 나오고 말았다. 물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발목이 찌릿찌릿했다. 그렇지만 꼬마들이 첨벙거리고 놀기엔 딱 좋았다.


가까이 가보니 물이 어찌나 맑은지 물이 품고 있는 돌들이 훤히 보였다. 물은 생명을 품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산 아래 낮은 마을로 갔다. 나를 한 번 스치고 꼬마들을 스치고 낮은 곳으로 갔다. 위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물들이 내려왔다. 매일 주어지는 시간처럼 매 순간이 새롭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물이었다.


그러다 작은 돌을 스치고 지나가던 올챙이를 발견한 꼬마들은 차가움도 잊고 물속에서 한참을 놀았다. 계곡에는 작은 물고기들과 올챙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차가운 곳에서도 아랑곳 않고 제 삶을 사는 생명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문득,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마음을 세우는 일이 새삼 중요하게 여겨졌다.


삼봉 자연휴양림에는 천연기념물 식수인 삼봉약수가 유명했다. 이 약수는 철분이 강한 탄산수로 여러 민간요법에서 효능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그 약수로 삼계탕을 해 먹으려 닭을 미리 준비해 간 터였다. 약수를 뜨러 물놀이 끝낸 아이들과 함께 약수터까지 산책을 갔다. 상쾌한 숲을 걸으며 떠온 약수로 닭과 인삼과 대추를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그렇게 먹었던 삼계탕은 사진도 한 장 찍지 않고 먹었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삼봉약수 삼계탕 사진을 꼭 남겨두리라.


탄산약수의 청량함과 얼음같이 차가웠던 계곡, 해를 가려주던 무성한 나뭇잎들이 상쾌함을 선사했던 여름날의 캠핑. 휴양림의 고즈넉했던 밤. 숲에서는 데크위 렌턴 불빛이 반짝였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며 서로 소통했던 여름날의 캠핑. 앞으로도 종종 그 순간들이 떠오를 것 같다. 어떤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서 그 좋았던 시절로 바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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