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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Oct 02. 2020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숲, 미천골 자연휴양림

울창한 활엽수로 터널이 이어진 숲은 안식을 줍니다

 요즘 같이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때 생각나는 휴양림이 있다. 숲을 채운 상큼한 공기가  선선한 가을 바람과 섞여 한없이 부드러운 곳. 차가운 계곡물에 한 두 잎씩 그 계절을 오래 산 잎사귀들이 떨어져 흐르는 곳. 계곡의 물소리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내려 가는 곳. 해가 지면 풀숲의 풀벌레들이 소곤거리며 제 삶들을 사는 소리가 들려 외롭지 않은 곳. 바로 미천골 자연휴양림이다.


 태백산맥의 동쪽,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에 자리한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원시 자연 그대로의 산림이 신비로운 곳이다. 50년 이상의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가 울창하여 휴양림을 들어서면 거대한 녹색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녹색터널 옆으로는 맑고 긴 계곡이 아래로 흘러가 무척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워서 휴양림 이름이 아름다울 미, 미천골일까?


 알고 보니 아름다울 미가 아닌 쌀 미였다. 휴양림을 들어서면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되었던 사찰터인 선림원지가 나오는데 당시 상당히 규모가 큰 절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미천골 이름의 유래가 나오는데, 사찰이 번영할 당시에 한 끼 쌀 씻은 물이 계곡을 따라 하류까지 이르러 미천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쌀을 씻었으면 계곡물이 쌀 씻은 뽀얀 미색으로 흘러내려갔을까? 푸르고 울창한 숲에 미색의 물이 흐르던 모습을 상상만 해보아도 사람들의 활기와 숲의 생기가 느껴진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처연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아이들이 꼬꼬마였던 시절이었다. 거의 한 달에 두어 번은 휴양림으로 캠핑을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오면 이미 숲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옆지기 덕에 화장도 지우고, 편안 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바로 출발이었다. 저녁을 휴게소에서 간단히 먹고 휴양림에 도착하면 이미 밤 10시가 넘어 조용히 집을 집는다. 야영장으로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차는 휴양림 내 야영장 입구에 세워두고 옆지기가 집을 짓는 동안 나는 잠든 꼬꼬마들을 안고 있었다. 빛이라곤 가로등 불빛과 군데군데 보이는 이웃 캠퍼의 렌턴빛 뿐. 우리는 잠든 아이를 한 명씩 안고 텐트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뉘었다. 아침이 되고 아이들이 눈을 뜨면 온통 푸른 숲에서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까지 잘 와주었어. 그동안 수고했어.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며 나지막이 속삭이던 나무들과, 계곡들과, 햇살들. 온통 푸르렀던 미천골 휴양림에 가을의 햇살이 내리쬐면 야영장의 너른 녹색 지붕이 뜨거운 햇살을 막아준다. 잎새들 사이 한 줄기씩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계곡에서 참방 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급할 것 하나 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끼니때가 되면 가져 간 한 줌의 쌀을 넣고 밥을 하고,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특별한 반찬 없이도 숲의 향기를 마시며 먹는 밥은 속을 채워준다. 그렇게 미천골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꼭 녹색의 품에 안겨 그저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의 좋은 기억은 그곳을 다시 찾게 만든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다시 미천골을 찾았다. 첫 방문 후 몇 해 지나지 않을 때였다. 계곡이 워낙 아름다워 일부러 여름날을 찾은 것인데 아쉽게도 머무는 삼일 동안 내내 비만 맞고 왔다. 규칙적으로 후둑후둑 삼 일간 끊임없이 내리던 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타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산이 짙어지는 걸 가만히 보았던 시간들이었다. 나의 캠핑 빅데이터에는 텐트를 칠 때부터 계속 비를 만났으면 으레 텐트를 걷을 땐 햇빛이 나기 마련이었는데, 그땐 나의 예측이 빗나갔다. 철수할 때도 흠뻑 비를 맞았으니까.


 백 년 넘은 씨앗도 충분히 조건을 갖추면 싹을 틔운다. 신기한 건 그렇게 비를 만난 캠핑 이후로 미천골 휴양림에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 하나를 심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몇십 년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던 오랜 꿈의 씨앗을. 어릴 때 나의 꿈은 탐험가가 되는 것이었다. 당장 배를 타고 먼 모험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울창한 원시림에서 며칠 머물면서 숲의 생장을 지켜보고, 숲이 계절을 갈아입을 때마다 내주는 것들을 모으고, 숲에서 치유되는 나와 너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탐험은 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기억 또한 그곳을 다시 찾게 만든다지. 비만 맞았던 캠핑이 아쉬워, 내가 심어두었던 씨앗의 발아가 궁금해 그렇게 자주 찾게 된 미천골 자연휴양림. 몇 해전에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미천골을 찾았다. 여전히 가을에 아름다운 휴양림이다. 잎새를 모두 떨구기 전에는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토닥이는 숲의 이야기에 한없이 마음을 놓으며 안겨 지내는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푸른 그늘로 한 낮에도 렌턴을 켜야만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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