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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Jan 17. 2020

자꾸 예쁜 것만 보이는 희리산 자연휴양림

- 맑은 계곡의 돌을 들추면 작고 귀여운 가재가 안녕하던 예쁜 휴양림

 충남 서천의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예전부터 캠퍼들 사이에 휴양림계의 5성급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겨울이면 보통의 자연휴양림은 휴장에 들어가는 반면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겨울에도 오토캠핑장과 2 야영장 중심으로 야영이 가능하다. 겨울에도 온수로 설거지를 할 수 있고 충전식이긴 하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도 가능하고 전기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시설과 더불어 접근성이 좋은 것도 큰 장점 중에 하나다. 서천 ic에서 십분 정도면 휴양림에 도착할 수 있다. 강원도의 휴양림들은 대부분 톨게이트를 나와서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한 두 시간 정도 가는 곳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접근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희리산 자연휴양림의 첫 방문은 힘들었던 기억만 가득했다. 충만한 캠핑 생활에서는 날씨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는데 머무르는 이틀 내내 장대비가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좋은 5성급이라도 종일 내리는 비와 강풍에 흔들리는 텐트가 버거워지면 그 장점을 누리기는 힘들어진다. 비와 강풍을 피해 군산에 가서 밥을 사 먹고 시간을 보내고 왔기 때문에 휴양림의 큰 장점인 온수 설거지는 더 이상 장점 일 수 없었다. 마지막 날에는 다행히 비가 개었지만 젖은 텐트를 말리고 흙들을 털어내느라 캠핑의 피로만 안은 채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렇게 희리산에서의 첫 캠핑을 마친 후 우리는 한동안 희리산을 찾지 않았다. 비도 비였지만 밤새 텐트가 날아갈 듯 휘몰아치던 서슬 퍼런 해풍의 기억 만으로도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가고 우연히 희리산 자연휴양림에서 벚꽃 캠핑을 즐기던 이웃 캠퍼의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분홍의 꽃봉오리가 환하게 열리고 벚나무 아래 빨간 텐트가 있던 사진이었다. 내가 갔던 곳이 이런 곳이었나. 한동안 그 이미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름도 끝나가고 가을이 다가온 어느 주말. 우리는 다시 희리산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때, 우리에겐 희리산을 들여다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결론은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면 보는 것도 달라진다. 미운 시선을 거두고 나면 자꾸 예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희리산 자연휴양림도 점점 예쁜 것들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쁜 것들 중 단연 으뜸 가는 것은 바로 2 야영장 주변의 계곡이었다. 수량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지만 맑은 물들이 쉬지 않고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냇가의 안부라도 묻는 것 같던 다정한 벚나무들도 참 예뻤다. 지난봄에는 분홍 꽃잎들이 하늘거리며 이 냇가로 떨어졌었겠구나.

 계곡의 작은 돌들을 들추면 이렇게 귀여운 가재가 서툰 아이의 손에 잡혀주었다. 고 작은 집게로 내 손도 꽉 잡고 놓질 않던 가재 친구들도 있었다. 잡은 가재들은 다시 냇가에 내려주고 그들이 다시 새로운 돌을 찾아가는 것도 지켜보았다. 차고 맑은 물을 매 순간 스치는 가재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잠시 겹쳤다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가재를 잡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처음이었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가재들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웠다.  유난히 비가 오지 않던 여름이 지나고 희리산을 찾았을 때였다. 원래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았는데 잔잔히 흐르던 냇물의 대부분이 말라버린 것이었다. 아주 소량의 물만 흘러내려 여기가 계곡이었다는 것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2 야영장 계곡에서는 한동안 가재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아쉽고 슬픈 마음이 찾아들었지만 계곡 위쪽에는 물이 마르지 않았을 것이고 거기에는 가재가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들 손도 닿지 않는 돌 틈에서 가재는 가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 믿기로 한 것이다.    

 가재를 잡았던 초가을의 캠핑 이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예쁜 기억들을 모으러 희리산을 찾았다. 이렇게 겨울에 찾아가면 한적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굳이 타프를 치지 않아도 겨울의 햇살은 빈 벚나무 사이로 은은하게 비춰 들었고 휴양림 내 임도를 따라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해송의 진한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여유가 되면 희리산 정상에 올라 서해바다도 내려다본다.

5성급의 시설도 겨울에 캠핑하기에 쾌적한 여유를 주었다. 십분 거리의 서천 특화 시장에 가서 여러 먹거리를 사 와 맛있게 해먹은 후에 온수로 설거지를 하고, 뜨끈한 전기장판에서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이었다.

 또 희리산의 예쁜 점들을 찾아보면 사계절 내내 푸른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 희리산은 산 전체가 천연 해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함께 모여 있어 더 푸른 해송을 보면 내 마음속에도 해송이 모여있는 푸른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휴양림 가까이에 유명한 갈대밭이 있어 가을의 낭만을 만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참 예쁜 휴양림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 소문보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첫 캠핑의 기억은 순전히 나만의 오해였던 것이다.

편견 없이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내 경험의 잣대로 쉽게 판단 내리지 않는 것이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덕에 벚꽃이 필 무렵, 초여름의 향기가 상쾌해질 무렵, 단풍이 들 무렵 그리고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무렵에 찾아가서 위안을 얻는 곳이 생겼다. 그리고 이곳에서 머무는 내내 장대비를 만나도 더 이상 캠핑이 버겁지 않게 되었다.



단풍이 드는 계절에 희리산을 찾으면 근처에 있는 신성리 갈대밭에서 가을을 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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