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 폭포
'이과수 폭포에 가면 내 여행이 끝나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내 눈앞에는 쏴아아 -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물줄기가 있다. 나이아가라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인 만큼 주변에는 시끌벅적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고개를 쑥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배를 타고 폭포 가까이로 다가가는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까지 부와앙- 내달려 가고 있는 걸 보니 나까지 아찔해진다. 물론 안전하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상기된 사람들의 흥분한 목소리와 즐거운 웃음소리가 이렇게 멀리까지도 생생히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고 있고 "와우~" 하는 환호성도 들려온다.
이토록 멋진 광경을 보고도 내 마음은 우리 집의 포근한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워 있는 상상만을 할 뿐이다. 관광지 특유의 격양된 분위기 속에 나 혼자 먹구름 낀 듯한 무표정이다. 하필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씨에 검은색 긴팔 옷을 입은 터라 몸에 열이 한껏 올랐고 얼굴은 더욱 칙칙해 보인다. 이렇게 좋은 날 웃어보자라고 마음을 아무리 다잡고 입꼬리를 올려보려 해도 요지부동이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남미의 여행지는 뭐든 스캐일이 남다르다. 남미이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폭포를 품고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안간힘을 다해 폴짝폴짝 뛰며 7개월간 보냈으니 몸도 마음도 지쳐 놀랄 수 있는 힘도 들떠서 사진을 찍어댈 힘도 남아있지 않은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여행 마지막 날짜에 맞춰 풀로 충전해놓은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지기 직전처럼 깜빡깜빡거린다. 끝을 알고 하는 여행의 단점이랄까? 브라질에서는 몇 퍼센트를 쓰고 페루에서는 몇 퍼센트를 써야지라는 식으로 정해놓지 않았지만 서서히 내 배터리는 닳아가고 있었다. 애써 충전되고 있다며 스스로 북돋아도 소용없다. 남미의 뜨거운 태양광 만으로도 충전이 되었다면 늘 풀 배터리로 지금까지도 쌩쌩 날아다녔을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아니 굳이 꼭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나에게 정말 무리인 여행이었다.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 첫 배낭여행을 남미에 왔다니. 그건 여행 도중에도 몇 번씩이나 그리고 여행이 끝나는 이 시점에 와서 까지도 여전히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과분한 여행이니 더 넘치게 나를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분에 넘치는 이상형을 만났다면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온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버거웠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그로기 상태가 된 거다.
주변의 소음들이 위잉 위잉- 거리며 섞여 정신이 몽롱해진다. 저마다 재잘거리는 목소리도 뭉뚱그려서 웅웅 거릴 뿐이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으며 점점 노곤해진다. 나무로 된 단단한 바리케이드에 축 처진 몸을 편히 기대 본다. 내려앉은 눈꼬리로 폭포를 응시한다. 쏴아아- 쉼 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눈이 점점 내려앉으려 한다.
깜빡.. 깜빡...
'그래 , 역시 오길 잘했지' 라며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입으로 내뱉었는지 속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거대한 무지개가 폭포를 감싸듯이 선명하게 내려와 있다. 무사히 계주를 완주한 선수에게 폭죽을 터뜨리며 축하하듯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여정을 마주한 여행자의 앞날을 축복하듯이.
'아, 정말 내 여행이 끝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