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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Oct 30. 2022

에필로그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느 연속선 상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완전히 단절된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된 듯한 묘한 기분이다. 이런 혼선이 생기는 건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걸 의미하겠지.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게 평등해진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듯이 나 역시 세월의 흐름을 논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저 어린것이 쯔쯧-'하고 혀를 찰지 모르겠지만)


 그건 달가운 일은 아니나 내 마음은 이상하리 만치 고요하다. 이제야 정말 괜찮아졌는지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뒤돌아보며 아쉬워하지 않게 되었다. 젊음뿐만 아니라 추억, 실수, 사람, 기회 모든 걸 포함해서 말이다.


 차곡차곡 쌓아온 남미 여행 에세이를 한 편씩 찬찬히 읽어보았다. 당시에 썼던 일기를 보았을 때의 마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서러움은 어느 순간 눈 녹듯 사라져 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따뜻한 온기가 자리 잡는다. 여행을 정리하기 전에는 내가 이만큼이나 남미 배낭여행을 애정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리움 덩어리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무척이나 그리워져 가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당장 작동시켜 다시 온전히 그 순간을 느끼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고 싶다거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한들 더 행복해질 수는 없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다시 여행을 하기엔 너무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모든 걸 느끼기엔 어린 나이였다. 지금 남미로 떠난다면 나만의 생각이나 감정에 갇혀있기보다는 더 큰 세상을 여유롭게 담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좀 더 가벼울 있을 텐데.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많은 게 어렵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머리가 지끈거릴 때가 있지만 그때처럼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삶에서 주어지는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생겼다.


 누구나 거쳐가는 그 혼란한 시기에 떠날 수 있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외롭게 방황했다. 그 밑바닥까지 느껴지는 감정과 고통을 담아주었던 곳이 남미라서 정말 감사하다.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해내고, 견디고 또 인내하던 나날들로 인해 그제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남미 여행의 기억이, 그때 부딪히며 배웠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거다.






 로라이마 산 정상에는 크리스털이 가득하다.


 훈장처럼 크리스털을 몰래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금방 단념했다. 만약 그때 크리스털을 가져왔더라면 점점 빛바래지다가 얼마 못가 꺼내 보지도 않았을 거다. 더 이상 찾아보지 않는 남미 여행 사진처럼, 또 연락이 끊긴 친구들처럼. 하지만 지금 산 정상에 남아있는 크리스털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을 보러 올 다음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어떤 것은 그대로 둬야 한다. 그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여행 에세이는 오래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응원하는 편지처럼 느껴진다.


이런 내가 존재했었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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