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만을 가게 된 이유 - 2016년 여름
나는 작은 계기에도 행동하는 상당히 행동파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크던 작던 동기가 생기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대만 여행도 시작 되었다.
단순한 감상 하나로.
대만에 대한 발단은 흔하게도 영화였다.
때는 2015년 모두가 알 것 같은 대표적인 대만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영화를 보았다. 그 때 가진동이라는 배우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나는 엔터테이너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관심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필모부수기를 한다. 가수면 앨범 필모 부수기 배우면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 부수기 등. 그래서 그 때 당시에 내가 봤던 영화는 "남방소양목장<그놈, 그녀를 만나다>"이다.
공부하러 가겠다고 말한 뒤 자신을 영영 떠나버린 여자친구를 찾아 학원가의 복사가게에 취직한 텅(가진동). 어느 날 복사를 하려고 집어 든 시험지에서 독백을 하는 양의 그림을 본다. 학원에서 보조로 일하는 양(간만서)이 밋밋한 시험지에 꾸준히 그려온 그림 옆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 텅. 그 그림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학원가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양과 텅은 시험지 위 그림 낙서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을까?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곳은 난양로이다. 난양로는, 그리고 난양로의 사람들은 타인의 사연을 일일히 들어주고, 상처도 보듬는 공간으로 태어난다. 이 공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영화에서는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길거리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어떤 분위기의 길거리일까. 평소 길,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을 좋아하는 내가 관심을 가지기엔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2016년 까지만 해도 대만은 사람들이 뜨문뜨문 가긴 하지만 너도나도 가는 여행지는 아니었고, 더욱이 난양로는 관광지가 아니기에 인기가 없었다. 열심히 구글링을 한 결과 난양로가 한국으로 치면 노량진, 혹은 신림동 고시촌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량진과 같은 공간이구나 하는 정보에서 그쳤으면 내가 대만에 빠지는 일은 없었겠지.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인 그 공간에서 어떻게 저렇게 치유를 받을 수 있는걸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니. 이 곳은 마법의 공간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적 장치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다른나라에도 우리나라의 특정 장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게 있다는 점이 더 흥미를 끈 것 같지만.
그래서 그 난양로에 직접 가 보고싶었다. 이유는 없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그렇게 사람의 심장을 간질이던 그 장소에 가고싶었다.
이것이 내가 비행기 티켓을 끊은 유일한 계기이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난 후 대만에 대해서 더 알아보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소녀시대" 라거나 지우펀이라는 곳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는 이야기 따위를 찾을 수 있었다 (실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의견이 많지만)
비행기 티켓을 끊은 계기 자체가 대만 영화를 보고 그 분위기에 반한 것이니, 다른 콘텐츠들이 주는 자극은 얼마나 또 새로웠을까. 그 콘텐츠들이 주는 느낌을 그곳에 가면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사실, 난양로는 정말 다행이자 어이가 없을정도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바로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근방. 타이페이 메인스테이션에서 타이페이 국립 대학 병원 역까지 걸어가는 그 길, 더 자세히 말하자면 메인스테이션 Z2 혹은 M6 출구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있을만큼 가깝다.
내가 처음 대만을 방문한 시기는 2016년 7월. 안그래도 동남아 아열대 기후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 여름에 방문하다니. 남들이 더워죽으러 가냐 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편이다. 찌는 듯한 더위가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여름만이 주는 설렘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습하지만 강한 햇빛으로 인해 습함이 가시는 느낌, 온몸이 달궈져 있다가 시원함을 만날때 식혀지는 감각들까지. 다른 사람들은 이래서 여름이 싫다- 라고 하는 조건들이 나에게는 그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가 될 뿐이었다.
물론 처음 맞이한 대만의 더위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습하고 머리로 쏟아지는 햇빛은 내 두피를 찢어놓을듯 강렬했지만.
그래서인지 난양로는 더 습하고, 난양로에서 공부하는 이들의 열기가 느껴질만큼 후끈 했으며, 한편으론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들의 열기마냥 치열했다.
난양로에는 각종 입시학원, 영어학원, 공무원 시험 등 다양한 학원 - 성인을 위한 학원 - 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학원생들을 유혹하기 위한 카페와 저렴한 음식점, 놀이 시설 등이 역시 즐비하다. 내가 난양로에 도착한 날은 평일 오후로, 시간이 시간인지라 학원은 물론이고 거리도 그저 한산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영화를 통해 대만 학원 로비 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았기 때문에 어딘가에 가진동이 있지 않을까, 어디선가 그들이 돌아다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관광지가 아닌 그들의 삶의 공간이라 그런지, 그 길은 정말 학원가가 늘어선 것 외에는 볼 것이 없다. 가진동과 난양로 거주민의 삶을 보며 대만에 대한 설레임을 키웠던 내게 사실은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영화에서 현실로 갑자기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양로의 길 끝에서 응?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분명 영화속에 나오던 학원, 영화 메인 타이틀 장면의 배경이던 공간, 그들이 지나친 곳들은 똑같지만, 내가 보고 온 건 이게 아닌데.
이런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에 대해 곱씹으며 숙소에 가기 위해 우선 다시 MRT에 올랐다. 살짝 혼란스러움이 없잖아 있었기에 왜일까에 대해 고민하다 내려진 결론은 첫째 내가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기에 이 곳이 영화속에 보이던 학원들의 인테리어를 한 공간이지만 어떤 학원인지는 알 수 없는 점. 둘째 실제 우리나라에서 노량진이나 신림동 고시촌엔 열심히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이들만 있듯 이들 역시도 그저 삶의 공간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나는 이들의 삶 어딘가에 있을 가진동을 원했다. 이 결론까지 내리니 내가 여행 온 것이 또 얼마나 즉홍적이었는지를 통감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그렇듯 잘생긴 남자주인공은 그냥 길바닥을 걸어다니지 않는다. 그걸 잊다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은 가셨지만 대신 남방소양목장 영화 뿐만 아니라 다른 대만 영화에 나오던 촬영지가 정말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이 풍경에 다른 기대감이 생기며, 그렇게 대만에 천천히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