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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구경 그리고 뼈대만 남은 나무들

무리한 가지치기의 이면에는..

by 라미루이 Apr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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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어느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아내가 갑자기 '보라매 공원'에 들리자 한다.

집에 돌아가는 경로 중간에 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흔쾌히 좋지! 하고 맞장구를 쳤다.

뒷좌석에 쭈그려 앉은 아이들도 신난다, 하고 표정이 급 밝아진다.

공영 주차장에 들어서니 공원 입구부터 만개한 벚꽃 무리가 우리를 반긴다.


차에서 내려 산책로를 걷다 보니 벚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누구는 유모차에 실은 하얀 몰티즈를 높이 들어 올려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느라 열일 중이다.

복슬한 댕댕이도 봄꽃이 좋은지 낮게 드리운 벚나무 가지를 향해 고개를 빼어 킁킁거리고, 혀를 내밀어 핥아보려 안간힘을 쓴다. 길게 뻗은 벚나무 가지는 거느린 꽃동아리가 꽤나 무거운 지 활등을 바짝 당겨 지상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봄바람이 살랑 불어댈 때마다 바닥에 내려앉은 꽃잎들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솟구친다. 오가는 사람들은 어머,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어디서 내렸는지 아내의 어깨 위에 꽃잎 하나, 살포시 자리 잡았다. 손 내밀어 털어줄까 하다가 돌아가는 길까지 남겨두자 싶어 모른 척했다. "뭐 묻었어?" 역시나 눈치가 빠르다. 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내는 살짝 눈을 흘기고는 아이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화사한 벚꽃 비가 내린 나무 둥치마다 멈춰 서서 아이들을 그 앞에 세웠다. 아이들은 양손으로 V 자를 그리고 갖은 아양을 떨며 포즈를 잡는다. 아내와 난 폰 카메라를 열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실제 사이즈에 근접한 헬기와 전투기가 전시된 광장으로 나아가니, 좌우로 넓게 팔을 벌린 품새의 벚나무가 보인다. 영락없이 잔가지를 활짝 펼친 장우산 모양이다. 그 우산 위로 하늘에서 내린 핑크빛 꽃눈이 소복이 쌓였다. 당연히 벚꽃 놀이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아이들을 겨우 트인 빈자리에 떠밀다시피 하여 몇 장의 사진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보라매 공원 중앙에 자리 잡은 타원형 트랙을 걷다가 편의점 방향으로 다가간다. 아내가 못내 아쉬워한다.

"원래 이 길이 벚꽃 명당이었는데.. 올해는 빈 가지만 처량하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 늘어선 벚나무들의 수형이 풍성했다. 한창 물이 오를 때면 꽃구름이 겹겹 층층 쌓인 것처럼 위풍이 당당했다. 전국에 꼽을만한 그 절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최근에 가지치기를 했는지 그 위세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주변에 전깃줄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신호를 가려 안전을 위협하는 것도 아닌데, 둥치에서 뻗어 난 굵은 줄기를 모조리 날려 버렸다. 저렇게 헐벗어서야 꽃은 피울 수 있을지, 아니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무자비한 가지치기로 인해 수족을 잃은 벚나무들은 기력이 다했는지 꽃을 피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널리 알려진 공원의 벚꽃 군락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전의 화려함을 기억하고 찾아든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간 실망한 눈치가 아니었다. 우리들 또한 전기톱의 절단 흔적이 가득한 벚나무들의 상흔을 훑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뒤늦게 찾아보니 가지치기 작업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 숨어 있었다. 가지를 바짝 쳐내는 '강전정'을 할수록, 작업이 빨리 끝날수록 용역 단가가 높아진단다. 가로수의 생장과 시각적인 균형미를 고려하여 '약전정'을 하는 것이 손품과 비용이 더 들 텐데도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함이 도처에 판을 친다. 그제야 떠올랐다. 길거리에 밑동만 남기고 모든 가지들이 잘려나간 가로수들의 끝없는 행렬이..

사실상 그들은 참수된 것이다. '좋게 좋게, 빨리 해치우고 넘어가자'는 우리네 편의와 탁상 행정에 떠밀려 그들은 기요틴에 목을 내밀다. 맹렬히 회전하는 기계 톱날에 온 몸을 유린당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못 본 체했다. 그들이 하늘을 향해 잔가지를 촘촘히 뻗어내고 푸른 잎을 싹틔우기 위해 평생을 두고 벌인 온갖 분투를 떠올려 보라.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짙은 그늘을 우리에게 선사하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감히 헤아릴 길이 없다.


초록 나무들이 자취를 감춘 도시의 거리를 떠올려 보라. 그들이 피우는 저 연분홍 꽃들마저 영영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자. 천변만화하던 자연은 그 주인을 잃고 도시 밖으로 멀리 밀려나겠지. '자연미'란 단어는 그 의미만 남아,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실체는 멸종될 것이다.

콘크리트와 인공물로 가득한 이 도시는 더욱더 삭막해지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자연물의 경이에 더 이상 감탄하지 않을 것이다. 앳된 아이들의 들뜬 웃음은 사라질 것이다. 모든 이들의 표정이 생기를 잃을 것이다. 봄이 찾아와도 우리는 갈 곳을 잃은 사막의 불개미들처럼, 아스팔트 도로를 미친 듯이 헤매다가 끝내 지쳐 쓰러지리라.  


* 관련 기사>>

[뉴스AS] ‘무자비한 가지치기’ 왜 반복되나 했더니…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코로나가 번진 이후 근 2년 만에 찾은 보라매 공원. 그곳에서 우리들의 자연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한 잔인함을 목격하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종뿐이랴. 전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는 다름 아닌 같은 '인간' 이리니..

공원 한 귀퉁이는 경전철 완공을 눈앞에 두고 한바탕 지반을 갈아엎공사 중이다. 희뿌연 먼지가 자욱하고 입 안에 까끌한 모래가 씹힌다. 대로변에 늘어선 벚나무들은 우리가 휘두른 전기톱에 모가지와 수족이 잘려 몸통만 덩그러니 남았다. 과연 그들은 부활할 수 있을까? 살아서 예전의 영화를 뿜어내 온 천하를 영롱한 빛으로 물들일 수 있을까.


저 푸른 하늘을 가리일 정도로 뭉게뭉게,

겹겹이 피어난 벚꽃 구름

듬성듬성 흩날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백 년 이 명목은 비틀거리며 피를 뚝뚝 흘린다.

그럴 거면 뿌리째 뽑아 질긴 목숨 끊을 것이지

앙상한 뼈대는 어찌 남기었나.


황폐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려다 기억에 오래 남을까 두려워 마음을 접었.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아내가 날 바라본다.

(아니야. 아무것도..)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나, 꽃 보고 표정 어두운 사람 당신뿐이야."

끌끌, 혀를 차고 돌아 걷는 아내의 뒷모습이 뭔가 허전하다.

앞선 아내의 옷깃에 앉았던 꽃나비 한 수,

사나운 바람에 날았는지 온데간데없다.

물정 모르는 아이들만 좋다고 어서 오라, 멀리서 손짓한다.




다들 활짝 핀 벚꽃 보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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