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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16. 2024

집 나간 년

집안 정리를 도와주던 지영이 돌아간 후 난 다시 마구 쑤셔넣은 옷들을 다시 꺼내 정리를 시작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길고 괴로웠다. 


지금 쯤 전남편은 거실 쇼파에 드러누워 “이 년이 돌았나?(전남편이 화가 나면, 종종 내게 하던 욕이다) 도대체 왜 이러지? 내가 요즘 신경질을 낸 거 가지고 이럴까? 자꾸 신경거슬리게 하니까 참을 수가 없잖아. 어차피 지랑 나랑 11년간 섹스도 없었고 뭐...동거인에 불과한데 뭐...내겐 경아가 있으니..이 년이 집 지키고 재산 좀 불려줬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지..민우 수능이 코 앞인데..미친년...민우 수능만 끝나봐라..아주 작살을 내서 쫓아내야겠어. 계획을 좀 당겨봐야겠는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꺼다.


전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찾지 말고 기다리기 바람. 다음 주에 연락하겠음.” 

아마도 전남편은 ‘아주 돌았구나...어디 뭘 가지고 이러는지 보자. 내가 가만두나 보자. 아주 개털로 만들어서 내쫓아버려야겠어. 그 사이에 지랄맞은 우리 엄마, 아버지한테 당하면서도 참고 사는게 안됐어서 봐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하는구나. 미친 년! 일단 애들은 이유를 모르는 거 같으니까 두고 봐야겠어.’     



“희원아, 민우야~ 아침 먹으러 나가자~! 팬케이크 어떠니?”

“좋아요!”

“근데 엄마는 소식 있어요?” 둘째 민우가 계단을 뛰어내려오며 묻는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단다..아빠는 어이가 없는데 일단 기다려 보자.”


아침을 먹고 들어오면서 전남편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단다. 아이들에게 지문을 등록하게 하고 내 지문을 삭제해 버리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내 집에서 한 번 나간 년은 다신 못 들어와!”      

큰아들이 걱정스러운 문자로 ‘엄마 어떻게 해? 이제 엄마를 집에 못들어오게 하려나봐.. ’ ‘걱정하지마. 엄마가 원하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어..엄마, 아빠 일은 엄마, 아빠가 해결할 꺼니까, 넌 2학기 수강신청 잊지 말고 등록날짜 잘 챙겨’


전남편은 이제 있는대로 열받아서 내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유치한 벌을 내리고 있다.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한다는 건 오히려 내가 왜 집을 나왔는지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는거다. 그래도 화가 나고 그 유치함에 치가 떨린다. 내가 알던 점잖고 자상했던 전남편은 이제 온데간데 없어졌다. 이제 연극은 끝났다. 그는 이제 지킬박사가 아니고 하이드의 본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내가 당황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거다. 그러니 나는 차분하게 나의 일상을 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성적 행동들을 차례차례 옮겨야 한다.     


후배 민정에게 전화를 했다. 8월 그날 핸드폰에서 빼온 2년간의 카톡의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엄마가 왜 이래야 했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들만 추려야 할 텐데, 지금까지 내가 본 내용과 동영상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변태적이어서 아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아서 도무지 다 보여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민정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안그래도 뵙자고 전화드리고 싶었는데, 우리 언제 봐요?”

“민정씨~ 나 좀 어려운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나의 낮고 쉰목소리에 놀란 그녀는 나의 간단한 설명과 객관적인 증거정리를 도와달라는 부탁에 금요일 저녁에 와서 토요일 오전까지 도와준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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