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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16. 2024

살기 위한 선택

카톡 내용을 보고 대충의 상황 파악은 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일요일에 지영이 집에서 민경이와 함께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너무 놀라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의 얼굴 표정만 살피면서 자료들을 보여 주었다.

“그래 상간녀 얼굴 좀 보자”

지영이와 민경이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내가 찍어온 핸드폰 사진을 보기 시작하더니, 아까보다 더 말없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정말 이 여자가 상간녀야? 이렇게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동네 아줌마같이 촌스런 여자랑 바람이 났다고?”

“정말 제정신이냐?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난 상간녀는 다 젊고 이쁜 여자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니 남편 취향 참~ 독특하다!”     


셋이서 함께 사진과 카톡의 내용들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참 많이 울었다. 날 속이면서 그렇게 속는 날 조롱하고 비아냥 거리며 둘만의 스릴을 즐기는 내용과 변태적인 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들이 나올 때마다 지영이와 민경이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넌 어쩌고 싶니?”

“이틀 동안 생각했는데, 난 집에서 나와서 이혼할 거야!”

민경이는 “네가 피해잔데 전남편을 쫓아내야지.. 네가 왜 나오니?”

순간 나는 민경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울부짖었다.

“카톡 내용을 봐봐. 그 상간년이 ‘지수에게 독약을 먹이자, 죽이고 싶다’고 계속 반복하는데, 내가 거기 남아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냐? 몇 년 전에도 나한테 수면제 과다복용하게 해서 나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코뼈 부러졌었잖아. 그게 다 그 새끼의 의도였던 것 같아. 그리고 이 새끼가 그러잖아 ‘조금만 참아. 내가 다 정리하고 집도 사주고 노후는 너와 함께 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이 새끼가 상간년에게 명품 사주고 생활비에 그년 애들 교육비까지 대주는데 난 왜 허드렛일 하면서 착취를 당해야 하냐고! 나 이제 하녀노릇 그만하고 싶다고!”


엄하게 한 악다구니에 민경이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텐데도,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나를 끌어안고 자신이 미안하다며 함께 울었다. 내 정신이 아니었고 누구에겐가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것이 엄한 민경에게 터진 것 같아서 미안했다.


울다 지친 내가 침대에 쓰러져 울고 있자 지영과 민경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기 시작했었다. 며칠째 먹지도 자지도 못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혼할 건데, 둘째 수능이 100일 밖에 남지 않아서 민우에게 제일 미안하다는 내 말에 친구들은 그때까지 참을 수 있겠냐고 그 얼굴 보면서 그렇게 너 무시하고 화내고 하대하는 인간을 참고 볼 수 있겠어?라고 했지만 “나 이 악물고 참아야 하나?... 민우가 얼마나 큰 결심하고 수능을 다시 보는 건데... 내가 엄만데 도와줘야 하잖아... 흑흑”


그런데 난 그렇게 참을 수 없었다. 둘째 민우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팠고,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 했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전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나의 작은 부탁에 전남편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뭘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내가 언제까지 너한테 맞춰줘야 하냐고! 지가 해달라는 건 다 해달라고 지랄이야

      

큰소리에 아이들이 놀라서 뛰어내려와서 내 눈치를 살폈고, 그렇게 전남편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인상 깊게 남기고 현관문이 부서져라 닫고 나가 버렸다. 그때 난 너무도 뻔뻔하고 잔인한 태도로 하대하던 그 모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결정했다. 이 집에서 나가서 자유를 위해 싸워보기로.     


이사한 오피스텔 침대에 누워 지난 5일간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외박을 하고 집에 들어가 짐을 싸서 나왔고, 오피스텔을 구하고 이사를 했다. 단 6일 만에 나에겐 너무도 큰 변화가 일어났고 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이 현실감을 잃곤 했다. 지난 6일간이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고 이 상황이 정말 사실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누워서 천장을 보며 어제 이케아 기사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친정 식구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속앓이를 하며 힘들어하실 아버지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그때 그렇게 반대를 한 건대.. 고집 피우고 결혼하더니....”라고 하실 엄마 생각을 하니 혼자 해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 중에 상간남인 전남편과 상간녀가 자신들이 노후를 함께 하기 위해 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나를 조정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떨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그렇게 상간남과 상간녀에게 조정당하며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눈을 감아도 눈앞에 그들의 모습과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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