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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May 10. 2024

몽돌의 이야기

나는 살아낼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봄비만의 특별한 냄새가 좋았다. 맑고 푸릇했다. 산과 들에 피어나는 새싹을 촉촉이 적셔주고, 이맘때의 황사로 탁해진 공기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겨우내 착 가라앉은 것만 같은 나의 기운도 덩달아 되살아났다. 봄비를 맞는 저 새순처럼. 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늦은 오후에 새하얀 안개가 되었다.





길을 가다가 쑥쑥 자라고 있는 보리를 만났다. 구수한 보리차를 좋아하는 나의 딸은 싱그러운 보리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빗물을 머금고 서 있는 그들은 미묘하게 딸아이와 닮아 보였다. 어리면서 성숙했고 연약한 듯 강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보드라웠다. 말간 얼굴을 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도 비슷했다. 보리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저장하고 우린 다시 출발했다. 한반도 서남쪽 끝,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다는 웅장했다. 파도는 몽돌을 한껏 모아 자르르 갔다가, 한가득 데리고 다시 데구루루 돌아왔다. 간조시간 바닷물은 어느 정도 빠져 있었으나 파도가 치는 힘은 굳건했다. 파도와 몽돌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은 한 편의 뮤지컬 같았다. 음악은 단조로우면서 화려했고 춤은 격정적이면서 우아했다. 관중은 우리뿐이었지만 매 순간의 열정은 공기를 가득 메웠다. 또 다른 관객일 것으로 추측되는, 건너편 수많은 섬들은 물방울을 잔뜩 품은 안개 뒤에 꼭꼭 숨어 보이지 않았다.





파도에 밀려 생긴 자갈밭이 아홉 개의 계단을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구계등 해변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그 계단 위에 서보았다. 이렇게 부드러운 안개가 자욱한 해변엔 침묵이 더 잘 어울렸다. 우리 발아래 몽돌은 나의 머리만큼 큰 것도 많았는데, 바다에 가까이 내려갈수록 딸의 손바닥만큼 작아졌다.


큰 바위가 작은 돌이 될 때까지의 세월을 그려보았다. 파도와 다른 돌에 깎여 작아지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내가 속절없이 작아지는 아쉬움일까.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는 개운함일까. 그리고 알고 싶어졌다. 몽돌은 파도가 데리고 간 어딘가에서 다른 친구를 만나 재미있을까. 어디 가지 않고 가만히 혼자 있고 싶을까. 여기서 제일 오래된 몽돌은 몇 살일까. 300여 년 전 이곳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방풍숲을 만들 때에도 있었을까. 제일 어린 몽돌은 언제 어디서 이리로 왔을까.





구계등해변의 몽돌은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 자연의 물결 따라 오랜 세월 옮겨 다니며 이리저리 부딪히고 깎이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면은 서서히 부드럽고 동글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날이 서있는 한쪽 면이 보였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뾰족함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찔러서 아프게 했을 법한 날카로움으로. 다른 이에게 부딪힌 흔적도 보였다. 상처를 주고 아픔을 받으며 투박하고 거칠었던 나는 아주 조금씩 매끄러워지는 중이었다.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속도로.


나는 더 흘러가야 한다. 더 부딪혀야 할 때이다. 몽돌의 탄생과 그동안의 삶을 상상해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겸손해졌다. 그리고 젊어졌다.


나는 지금
제일 젊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다.







오늘의 숨바꼭질은 섬이 이겼다. 우리는 안갯속에 꽁꽁 숨은 그들을 끝내 찾지 못했다. 이번엔 우리가 숨을 차례다. 방풍숲 넘어 야영장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몽돌의 인생을 마음속에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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