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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수

열한 번째 시

by 풀 그리고 숲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공포 속에서 발버둥 쳐 본 적이 있는가

필사적인 발버둥은 연약한 신생아의 발짓처럼 쓸모없다

마치 끈적한 늪에 빠진 듯 더 가깝고 선명해질 뿐


곧 죽을 것 같아서

죽고 싶지 않아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불을 끄고 어둠에 나를 가둔 뒤 눈꺼풀을 덮었다

나만의 암실에 들어가 어둠에 맡겼다

모두 받아들이겠노라 숨을 들이마셨다

이 길로 폐가 망가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의 움직임이 들린다

흘러버린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잔잔해졌다

피에 버무려져 부드럽게 펌프질 할 뿐이었다

사라졌나, 공포가

사라졌나 보다


바라던 고요와 평화를 곁에 두니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공포가 무겁게 짓누른 그때처럼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마음이 미워질 때가 있다

마음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내가 옹색해서

마음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그가 어색해서

가만히 공포의 수를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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