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와 행위를 분리하는 연습을 하면서
피드백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오히려 피드백은 내 행동을 알아차리는 자각제였다.
나의 행위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존재가 다치는 일이 덜해진다.
요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정과 생각, 판단, 그리고 드러난 사실까지 하나씩 분리해 본다.
머릿속을 스치는 감정, 그 뒤를 잇는 생각,
그리고 사실 위에 덧입혀지는 나의 판단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해 본다.
판단을 거두고, 사실에만 집중한다.
그럴 때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을 지켜보는 관객이 된 듯하다.
주인공이 부끄러움을 느끼면 관객도 대리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어쩐 때는 팝콘을 먹으며 ‘음, 부끄럽겠네’ 하고 지켜보기도 한다.
나의 일이지만 나의 일 같지 않은 순간.
그때 마음은 새삼 덤덤해진다.
그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 본다.
조급할 것도 없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예전엔 명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하라니,
그저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는 10일간의 비파사나 명상만으로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쉽게 감각에 반응하는지 깨닫기에 충분했다'라고 말한다.
불쾌한 감각에는 기피로, 쾌적한 감각에는 갈망으로 반응하는 인간의 정신.
그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동안
고통의 근원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주)
요즘 나도 그 훈련을 하고 있다.
감정이 일어나면 바라보고, 생각이 스치면 그냥 보내준다.
내가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나의 정신이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는지 지켜본다.
그것이 명상이었다.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나를 알아가는 일.
명상은 고리타분한 수행이 아니라,
나를 탐험하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이었다.
영화 속의 '나'를 지켜보듯,
오늘도 나는 나를 관찰해 본다.
조용히, 그리고 흥미롭게.
(주)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