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와 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많다.
한 분 한 분 다 기억하지만,
확고하지 못했던 시절의 내가 떠오를 때면 마음이 쿡 찔린다.
특히 '한 달 안에 감량하고 싶다'는 회원님들을 만났을 때가 그랬다.
뚜렷한 목표보다는 '이번에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찾아온 분들이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수치로 결과를 내야 하는 그들의 기대 앞에서 나는 늘 난감했다.
운동을 배운다는 건 살을 빼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고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나의 움직임'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관절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아 움직일 때,
비로소 몸은 조화를 회복한다.
좋은 움직임은 협응력을 길러주고, 바른 감각을 만든다.
그 감각이 부상을 줄인다.
하지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각이 둔하다.
기초 움직임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부하를 주면,
몸은 보상 패턴으로 버티며 스스로를 다치게 만든다.
점프를 해도, 스쿼트를 해도, 그 근본이 없으면 결국 무너진다.
A회원님은 20대 여성으로, 운동을 싫어하던 분이었다.
몸의 스위치가 늘 꺼져 있는 듯한 상태였다.
조금 먹고, 술은 안주 없이 마셨고,
집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 술은 괜찮을까요?"
그녀가 가장 먼저 물은 건 늘 술이었다.
그녀는 하루 한 시간 센터에서 운동했고,
나머지 시간은 누워서 보냈다.
나는 그때 그녀의 몸보다 결과에 집중했다.
건강을 회복시키는 게 먼저였지만,
그녀가 원한 건 감량이었고, 나 역시 그 기대에 매몰되었다.
그 결과, 한 달이 지나도 체중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나는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단호하지 못했다.
"길게 보세요."라는 말을 영업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웠고,
내 트레이닝에도 확신이 없으니, 말에도 힘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의 결과보다 나 자신이 더 문제였다.
회원의 '원함'을 따라가기보다,
몸의 '필요함'이 진짜 뭔지 느끼게 해주는 게 트레이너의 역할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운동을 배운다는 건 단순히 땀을 흘리는 게 아니다.
움직임을 배우는 과정과 강해지는 경험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세운다.
그때 내가 조금 더 단호했다면,
그녀는 몸의 변화뿐 아니라
자신을 믿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이제 단호할 수 있다.
단호함은 진심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