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익숙한 움직임 안에서만 머문다.
그 안에서 오래 반복된 패턴은 편안하고,
조금만 다른 방식이 들어오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게 맞나?' 하는 의심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새로운 움직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전 방식도, 지금 배우는 새로운 방식도
모두 쓸 수 있게 된다.
두 개의 패턴을 갖는 순간,
움직임은 더 다채로워지고
근육과 신경의 활용도 확장된다.
이것이 몸이 더 똑똑해지고 건강해지는 과정이다.
이때 가장 방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머리다.
너무 알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움직임에 기존의 감각을 덧붙이려 한다.
새로운 감각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반복해야 빠르게 익숙해지는데,
자꾸 익숙한 감각과 연결을 지으려 할 때
학습은 느려진다.
어쩌면 이것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고집을 내려놓고 낯선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감각 경로가 열린다.
감각은 점점 섬세해지고,
몸은 더 정교한 움직임을 배워간다.
운동을 조금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성장은 멈춘다.
신경과 근육 발달도 거기서 멈춰 선다.
운동은 언제나 어렵고,
평생 배워도 다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움직임을
조금은 용기 내어 받아들이고 반복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결국 '내 것'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운동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새로운 패턴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새로운 것을 잠시 머뭇거리지 말고
그저 해보는 것,
그 태도가 나를 성장형 인간으로 만든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면
'고수에게 그대로 배우는 것'이 답일 때가 많다.
낯설고 어려워 보여도
그저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것일 뿐.
새로운 스승에게 배운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
몸은 훨씬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고집을 피운다는 것은
어쩌면 '못 믿는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익숙한 방식에만 머물다 보면
새로운 스승의 방식이 낯설어서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 의심은
'이 사람이 맞다고 인정하면
나는 틀린 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배움 앞에는 정답이 없다.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두 가지를 모두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를 내 몸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필요한 순간에 적재적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가진 움직임의 범위는 점점 커진다.
결국 잘 배우고 싶다면,
머리를 잠시 내려놓고
몸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뇌 빼고 받아들인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정확한 배움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