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마다 부르는 값이 왜 서로 다른가

#10. 주택 가격 평가의 온도차

by 목양부인




집주인과의 두 번째 통화 후

나는 급격히 피곤해졌다.


법으로도 보호하는 전월세 세입자의 권리를

설파했을 뿐인데, 내가 집주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급기야는 나에게

"막무가내"라는 소리를 연신 해댔으니.






말 막. 없을 무. 가할 가. 어찌 내.
(정한 대로 고집하여 도무지 융통성 없음)


뜻이나 제대로 알고 쓴 단어인가.

묵시적 갱신 2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보증금 올려줄 명분도 사라진 세입자에게

5% 증액도 아니고 현재 시세와의 차액에서

절반까지 면서 내게 막무가내라니.


이대로는 입 아프게 계속 설명해봤자

내일 또 전화해올 게 뻔하므로 나는 일단

근처 부동산이랑 얘기를 해보고 어찌할지

알려주겠다며 통화를 대충 마무리했다.






집주인이 집 앞 부동산에서 다들 그랬다며,

시세가 몇억 원 대로 올랐다고 강조했으니

나는 집에서 좀 떨어진 역세권의 부동산에서

이 집 시세를 객관적으로 조사해봐야겠다.


이참에 공인중개사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직접 들어보려고 나는 마치 임대인으로서

집을 내놓으러 온 모양새로 집주인이 전날

나에게 펼친 기적의 논리를 재현해냈다.






요즘 그 단지, 시세가 얼마나 올랐냐고.

집을 내놓고 싶은데 전세가 콕 껴 있다고.

어휴... 아직 1년 10개월은 더 남았다고.

맞아 그... 묵시적 갱신이라는 것 같다고.

아니 그럼, 보증금을 못 올리는 거냐고.

5%는 된다던데 그것도 아니었냐며.

그럼 내가 직접 들어가 살면 어떻겠냐고...

세입자 내보내려면 이사비 주면 되냐고.

위로금 주기도 한다던데 얼마쯤 일지...







공인중개사 사무소 몇 곳에 같은 질문을 했다.

집주인도 아닌 주제에 거짓말로 사장님들을

우롱하며 귀한 영업시간을 빼앗는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떨렸다.(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사장님들이 하나같이

나의 질문에 객관적이고 아주 단호한 태도로

'안된다'고 말해줫다는 점이다. 마스크 속에

감춰져 있긴 했지만 어떤 사장님은 나를 퍽

한심하게 바라보는 표정이 전해지기도...


역세권 공인중개사들은 이 집을 했다.

시세도 집주인 말보다 한참 더 아래쯤으로.

언덕 위의 구축이라 인기 없다는 이유였다.


대단지로 보기도 어렵고 나 홀로 급이라서

아파트긴 해도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그냥 싼 맛에 누가 들어가려고 할 수 있어도

신축 빌라가 이미 지천에 널려있지 않냐고.






전세 가격의 합리적인 적정선도 받았다.

동호수까지 집어넣고 검색해본 물건 가격에

전세자금 대출 최대치로 산출해본 전셋값.


나는 집주인이 말한 가격도 슬쩍 흘려봤다.

집 앞 부동산에서나 그렇게 부를 거란다.

수요자보다는 공급자와 거래하는 곳이라

소비와 관계없이 값을 높게 책정할 거라고.


어차피 손님은 역세권 사무소에서 데려가

공동 중개를 하니, 아파트 단지 앞 부동산은

앉은자리에서 물건만 보여주면 되니까

비싸서 집을 찾는 사람이 있든 없든, 일단

가격을 올려놓을수록 좋지 않겠냐면서.






사무실 입지와 위치에 따라 공인중개사들이

집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가치는 대립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의견 양극화 매한가지.


임대3법을 두고도 쟁점이 묘하게 갈라진다.

임대주택 카페에서는 세입자 보호 권리를,

부동산 공부 카페는 임차인 내보낼 궁리를,

집단지성의 힘으로 각종 잔꾀가 모다.


감정평가 이론에서 배운

가격과 가치의 정의가 생각난다.


가격은 서로 합의된 실제 교환금액이고

가치는 평가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미래의 예상 기대치를 의미한다고...


무주택자와 다주택자, 임대인과 임차인,

부동산 사무실 지리적 특성과 상권에 따라

집을 보는 가치가 극명하게 다른 것 같다.


한쪽 여론만 흡수하면 편향되기 십상일 터.

다양한 입장을 살피며 지혜를 구해야겠다.








베란다에 핀 겨울왕국 눈꽃. 냉동실 아님.



새벽에 보일러가 난방을 돌다 돌연 기절했다.

보일러실 옆 창문을 보니 대충 수긍이 된다.


아! 당장 내일 아침 얼음물로 씻을 걱정

창문보다 냉각된 이 집 세입자의 마음이란.

이 와중에 저게 크리스털처럼 보다ㅋㅋ


4년이나 이 집에 살게 해 줬으면

감사한 줄 알라던 집주인 말이 떠오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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