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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엘 Mar 13. 2024

프롤로그 : 첫날에 앞서 -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세계

도서관은 늘 내 옆에 있었습니다.

퇴사 후 알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은 늘 내옆에 있었습니다.


상상 나라의 도서관

고등학교 때의 도서관은 상상 나라의 로맨스가 가득했던 곳입니다.  “내가 만약 대학을 가면…” 상상을 했습니다.  긴 웨이브 머리에 꼭 핑크색 머리띠를 하고, 예쁜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대학교 도서관에 가야지. 내가 원하는 책이 저 높은 선반 위쪽에 꽂혀 있네. 아. 까치발을 들고, 손을 길게 뻗어도, 닿지 않는다. 사다리는 안보이고, 한 번 다시 해보자. 그 순간 등 뒤로, 까맣게 그을린 단단한 팔을 가진 멋진 선배가 스윽 책을 뽑아준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선반에서 뽑아본다. 그 책 한권 만큼의 빈 공간 너머로, 맞은 편 쪽에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어제 그 선배다. 나도 모르게 쳐다보았는데 선배와 눈이 마주쳤고, 가슴부터 머릿 속까지 쿵쾅쿵쾅 소리가 온몸을 감싸고 있다.


도서관에 대해 이런 상상을 했었던 고등학생인 나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현실에서는 슬프게도 여대를 다니게 되었고, 도서관의 로맨스 주인공 선배는 상상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네요.  


시험 공부를 위한 도서관

막상 대학을 다닐 땐, 도서관은 저에게 책을 가까이 하기 보다는 대학교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리포트 준비를 위한 곳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바라본 벚꽃은 왜 그렇게 예뻤을 까요? 시험 전 날은 하루종일 벼락치기를 해도 모자라는 시간인데, 벚꽃이 휘날리는 날에는 도서관 창문으로 그 벚꽃을 보며 오후에는 땡땡이를 치러 나갔네요. 산책을 하다가 날이 좋아서 맥주를 마시러 가고. 그렇게 그 과목은 재수강이 되었습니다.


멀어진 도서관

회사를 다닐 땐, 문득문득 ‘오늘 같은 날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매일 매일 넘쳐나는 업무와 약속, 회식 속에서 도서관을 한번 가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휴가나, 주말 한번 쯤은 가볼 수 있었을 텐데. 도서관을 가는 것보다는, 극장을 갔고, 도서관을 가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핫플에서 브런치를 먹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도서관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 졌나 봅니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결혼 이후의 도서관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땐, 그림책을 보여주기 위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난 이후에는 논술 수업에 필요한 책을 매주 열심히 대여하는  곳으로서의 공간일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자주 함께 가고 일부러라도 데리고 가고, 엄마의 숙제처럼, 아이와 함께 오고가는 곳으로 도서관이 그렇게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를 위한 도서관

퇴사를 한 후, 도서관은 나를 위한 곳이기를 소망해봅니다. 대기업 팀장, 외국계기업 아시아지역 매니저로 치열하게 21년을 일한 결과는 번아웃이었습니다. 나와 대화하고 싶어서, 나를 좀 더 알고 싶어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지난 20년 넘게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했는데, 집에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합니다. 아웃룩의 일정이 빈칸으로 텅 비워 있는 넘치는 시간으로 가득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20년을 넘게 회사로 출근을 하는 습관이 온몸에 스며 들어 있었나봅니다. 집에서 아침을 보내는 나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집에 있기 보다는 어디라도 가보자는 마음으로 간 곳이 도서관이었습니다.


퇴사 후, 매 주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기로 했습니다.

SNS에서는 다양한 성공사례와 이야기들 강의들이 소개가 됩니다.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책을 읽었고, 책 속에서 자신을 찾았고, 나와의 대화를 했다고 하네요.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딱 1년 아무생각 없이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퇴사를 하고, 어떠한 TO DO LIST가 없고, 업무를 지시하거나 보고할 필요도 없지만 스스로가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살아보려합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읽어보고, 좋은 문장은 필사를 하고 공유를 하고, 서울 시내 좋은 도서관을 다녀보자.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써보자. ‘쉬는 시간’ 자발적 백수의 시간에 나를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결과를 만들어 보려합니다.


카디르 넬슨의 그림책 [아기곰] 아이들에게 잠자기 전에 읽어주던 책입니다. 번아웃으로 마음이 힘들었던 날, 이 책에서, 무스 아저씨가 해준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잠들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아기 곰에게, 개구리, 다람쥐 등 만나는 동물들이 집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줍니다.  뿔이 멋진 무스 아저씨는 길을 잃은 아기 곰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만일 내가 길을 잃는다면 말이야. 잠자코 앉아서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거야.
마음은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지. 게다가 결코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단다.
반드시 널 집으로 데려다줄 거야…

[아기곰/ 카디르 넬슨 글.그림]


도서관에서 잠자코 앉아서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책이 가지고 있는 그 힘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1년 동안 도서관이 나를 품어주어, 나 혼자 오롯이 시간을 보내며, 혼자 단단해지기 위한 나의 둥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날 집으로 데려다 줄거라 믿어봅니다.  


아마도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라는 유명한 문장을 도서관에서 나도 이해하는 날이 올까요.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Who would be born first must destroy a world."  - Demian, Hermann Hesse-


생각해보니 도서관은 항상 옆에 있었습니다. 다만 나의 삶에 따라 필요에 따라 그 쓰임이 달랐습니다. 이제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당신에게 도서관은 어떤 공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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