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맺는 힘 – 딸의 사랑을 지지하는 대화법
딸이 처음 사랑을 말할 때,
그 안에는 단순한 호감뿐 아니라
자기 의심, 설렘, 실망, 질투, 두려움, 그리고 기대가 함께 들어 있다.
사춘기 연애는 어설프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 어설픈 감정 안에서
딸은 세상과의 첫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간다.
그런데 그 관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무너졌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딸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사람은
조언자가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럴 줄 알았다.”
“공부나 하지 왜 그런 걸로 울어?”
“그런 건 다 시간이 해결해.”
이런 말들은 딸의 감정을
더 깊은 침묵으로 밀어 넣는다.
딸이 상처받았을 때 가장 필요한 건
해결책이 아니라,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해”라는 말이다.
『감정 연습을 시작합니다』(하지현, 2022)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은 말로 표현할 때 비로소 정리가 된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은
내면 회복력의 출발점이다.”
실연, 거절, 싸움…
사랑 안에서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은
곁에 있는 사람이 말을 들어주는 순간 조금씩 회복된다.
그 곁이 아빠라면,
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더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말이 꼭 많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딸은 위로받는다.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지금 그런 기분 드는 거, 당연한 거야.”
이렇게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
딸이 자신을 회복하는 힘이 된다.
어떤 딸은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건 참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해 봤자 뭐 하나”라는
실망이 쌓여서 그렇다.
아빠가 감정을 들어주는 사람이 될 때,
딸은 감정을 더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할 줄 아는 딸은
관계 안에서 상처받아도 다시 설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진다.
고등학교 1학년 하연(가명)은
좋아하던 친구와 말도 없이 멀어졌다.
친구는 갑자기 다른 무리로 옮겨갔고,
하연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혼자가 되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간 하연에게
아빠는 물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하연은 입을 떼지 못하다가
“그냥… 아무 일도 없었어.”라고 말했다.
잠시 뒤, 아빠는 하연의 방에 조용히 들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 하연은 울면서 말했다.
“그냥 들어줘서 고마워.
누구도 내 얘기 안 들어줬거든.”
“딸이 실망했을 때,
뭔가 말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곁에 있어주는 걸 먼저 택하겠습니다.
말보다 존재가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