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시작, 사춘기 딸은 사랑을 배우고 있었다
딸아이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아빠, 나 요즘 누가 좀 좋아지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어색하게 웃었는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는가.
혹은, 당황한 나머지
“그 나이에 무슨 사랑이야”라고 말하지는 않았는가.
그 말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딸이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감정을 꺼내는 훈련이다.
그 첫 문장을 누구에게 전하느냐는
그 아이의 감정 언어 습득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좋아해’라는 마음 안에는
설렘, 기대, 불안, 질투, 비교, 자책…
셀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복합적인 감정을
“그냥 좋아졌어”라는 말 한 줄로 정리해 본다.
그 말은 용기다.
자기 내면을 밖으로 꺼내는 첫 연습이다.
『감정 연습을 시작합니다』(하지현, 2022)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스스로 감정을 해석하고 돌볼 수 있다.
감정은 표현하지 않을 때 더욱 뒤틀린다.”
사랑을 배우기 전에,
우리는 감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딸은 누구보다 먼저
아빠를 통해 이성을 바라보고 사랑을 해석한다.
아빠는 연애 조언자가 아니라,
감정과 태도를 보여주는 교과서이다.
말투, 시선, 표정, 그리고 반응의 속도까지.
딸은 그것을 기억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아빠는 웃었는지, 외면했는지, 나와 눈을 맞췄는지.”
아빠가 감정을 가볍게 여겼다면
딸은 자신의 감정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반대로, 아빠가 감정을 존중했다면
딸은 스스로의 감정에 자존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감정 표현을 배운 적 없다.
그래서 더더욱
딸이 감정을 말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 실수를 범한다.
하지만 딸이 바라는 건
‘정답’이 아니라 ‘존재의 허용’이다.
“그래, 그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
“말해줘서 고마워.”
“그 마음, 참 예쁘다.”
이 몇 마디가
딸에게는 세상에서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이성에 대한 감정은
딸이 세상을 향해 관계를 맺는 연습이다.
그 감정이 존중받은 아이는
타인과도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랑을 배운다.
반대로, 그 감정을 부정당한 아이는
감정은 숨겨야 할 것이라 배운다.
그런 아이는
불편함 앞에서 침묵하고,
사랑 앞에서 경계하게 된다.
“그 친구 어떤 면이 좋았어?”
“그 마음을 느낀 너 자신이 참 멋지다.”
“네 감정은 틀리지 않아.”
그 말들 사이에서 딸은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법을 배운다.
“딸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 감정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그 용기를 먼저 안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