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자로 세상을 보다》

2편. 信 – 믿음은 시간을 건네는 것

by 라이브러리 파파

“아빠, 그럼 믿는다는 건 뭐야?”
‘사랑’ 이야기를 며칠째 나누던 아이가
이번에는 ‘믿음’을 꺼냈다.
그 질문은 생각보다 어렵게 다가왔다.

나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음… 믿는다는 건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마음일 수도 있어.”
“기다리는 게 믿음이야?”
“응. 믿음은 그 사람이 어떻게 할지 확신은 없어도, 기다려주는 거지.”
아이의 얼굴엔 아직 잘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信’이라는 한자를 들여다봤다.
사람 인(人)에 말씀 언(言).
사람과 말, 그 두 가지가 하나가 될 때,
그게 ‘믿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줬다.
“사람이 말한 것을 지키는 것,
그게 신(信)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을 꼭 지켜야 믿을 수 있는 거구나.”
“맞아. 말은 약속이기도 하니까.”

며칠 뒤, 아이는 약속을 어겼다.
“숙제 다 했어”라고 말하고는
사실 아무것도 안 했던 것이다.
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안 했어?”
“그냥… 귀찮았어. 근데 아빠가 화낼까 봐 거짓말했어.”
아이는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화내는 대신 아이 곁에 앉아
‘信’ 자를 다시 꺼냈다.
“거짓말을 하면 믿음이 금방 깨질 수 있어.
그건 아주 작은 일에도 그래.”
“미안해. 다시 안 그럴게.”

나는 아이를 꼭 안았다.
“아빠는 네가 실수해도 다시 믿고 싶어.
믿음은 말이 아니라
그다음 행동으로 다시 쌓는 거니까.”

다음 날,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스스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조금 삐뚤어진 글씨였지만,
그 속엔 ‘다시 믿음을 쌓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아이의 등을 조용히 두드렸다.
“지금, 네가 말보다 더 큰 걸 보여줬어.”

그날 밤, 우리는 ‘信’을 다시 썼다.
아이의 글씨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나는 그 글자를 아이의 방에 붙여주었다.
그 위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믿음은 완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노력에서 자라는 거야.”

아이와 나는 신뢰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말한 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한 대화 속에,
‘信’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믿음은 잡고 있는 손과 같다고.
세게 잡으면 아프고,
너무 느슨하면 놓쳐버린다.

아이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
나는 그 균형을 느낀다.
조금 빠르게 걸을 때는 내가 리드하고,
조금 느려질 때는 아이가 내 손을 꼭 잡는다.
그 안에 믿음이 있다.

믿음은
"기다려줄게"라는 말 한마디보다,
실제로 기다려주는 행동 속에 있다.
아이의 속도를 인정하는 것,
그게 진짜 믿음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말했다.
“아빠, 나도 이제 아빠 믿어.”
그 말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 말속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信’은 하루아침에 자리 잡지 않았다.
말을 지키지 못한 날,
화를 냈던 순간들,
작은 실망들이 있었고,
그걸 이겨낸 많은 사소한 날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믿음은 결국 시간을 건네는 일이다.
오늘보다 내일 더 믿어보는 것.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
어쩌면 우리는 매일 서로에게
그런 시간 한 줌을 선물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나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아빠는 널 믿어.
지금보다, 내일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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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믿음을 배우던 아이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아빠, 제일 편한 건 집이야.”

우리가 매일 돌아오는 곳,
말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장소.
바로 ‘家(집)’이라는 한 글자 안에는
‘함께’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지붕 아래 가족이 있다는 뜻,
그 안에서 마음이 쉬는 법을 배우는 시간.


다음 이야기
3편. 家 – 집은 함께 돌아오는 마음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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