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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Oct 14. 2021

여행 첫 날, 돈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옥토버페스트를 즐겼던 뮌헨에서의 첫날(18.10.04)

뮌헨에서의 숙소는 반지하였다. 옥토버페스트로 인해 시내 중앙의 숙소 가격이 비쌌던 탓에 꽤 교외지역(게르메링)에 비싸지 않은 숙소를 예매했는데, 여러모로 고려하지 못하지 못하고 숙소를 예약해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빨래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점과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다는 점이 가장 불편했다. 반지하라는 점도 몰랐는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사흘 내내 푹 잘 수 있었다. 전날 장거리 비행을 하고 온 탓에 숙소에서 느긋하게 오전 10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거의 낮 시간이 다 되어서 나왔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덕분에 뮌헨의 첫인상은 아주 청명했다. 그 푸르고 눈부신 날씨는 우리가 뮌헨을 떠나는 이틀 뒤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유럽에 왔는데 날씨가 이토록 좋다니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숙소에서 전철역까지 보통 속도로 걸으면 15분 거리였는데, 처음에 걸어갈 때에는 거의 3-40분 정도 걸렸다. 단정하게 깎인 정원수들과 깨끗한 길거리, 신호등, 표지판과 같이 사소한 것들에도 감탄하며 지나가던 누가 봐도 유럽에 처음 와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 찍고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걸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말 느긋한 여행자였다. 나도 첫 여행치 고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덕분에 더더욱 잘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은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이 그냥 길거리의 횡단보도가 우리나라와 다르게 점선으로만 표시되어있는 것만 봐도 새롭고 신기했으니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둘 다 사실 이날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보기 위해 표를 예매해두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나 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느긋하게 집에서 나온 뒤 전철에 탄 이후에 ‘우리 오늘 뭐하기로 했었지?’하며 핸드폰을 꺼내서 구글 드라이브의 여행 계획표를 확인할 때였다. 이날 노이슈반슈타인 성 입장권을 오후 1시로 예매해두었던 것이다. 그땐 이미 11시였고 퓌센은 가는 데에만 2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당장 간다고 해도 예약해둔 시간까지는 성에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예약금이 이미 카드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하고 놓친 걸 진심으로 아까워했는데 다행히도 알고 보니 결제는 현장에서 되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뮌헨을 떠나오면서 정산할 때였지만 어쨌든 우리는 금방 그 아쉬움을 잊고 다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전철을 타고 시내에 나오는 동안 배가 매우 고팠다. 전날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요깃거리로 먹을 것을 아무것도 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물도 사지 못해서 광장에 있던 식수대에서 빈 페트병에 받아가지고 왔다. 허기진 몸을 이끌고 역사로 나오자마자 베이커리에 풍성하게 진열된 빵들이 보였다. 여행하는 동안 사용할 유심칩을 산 다음 점심을 먹으러 갈 계획이 있었지만 베이커리에서 풍겨오는 부드러운 버터 냄새를 맡고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빵들은 한국에서 파는 빵들보다 훨씬 크고 탐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결국 커피와 빵을 사서 먹기로 했는데, J는 이때 계산을 하다가 20유로짜리 지폐를 떨어뜨렸다. 원화로는 약 2만 5천 원 돈이었다. 나도 J도 그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툭툭 쳐서 알려주신 덕에 돈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덕에 뮌헨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으며 브런치를 즐기고, 유심을 구매한 다음에야 뮌헨에서의 첫 식사를 하러 갔다.


첫 식사를 하는 길도 생각보다 뜻밖의 긴 여정이었다. 지도상으로는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했지만 레스토랑에 앉기까지 30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가는 길에 식료품점을 구경하기도 했다. 생소한 종류의 과일과 채소가 진열된 것을 보고 신기해하고, 파스타 종류와 맥주, 잼, 버터, 치즈 같은 것들의 다양성을 부러워했다. 사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꽤 오래 구경만 하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마트를 나왔다. 드디어 첫 식사를 하러 들어간 레스토랑은 ‘Andy’s Krabler Garten’이라는 곳으로 가성비가 좋은 슈니첼로 유명한 곳이었다. 슈니첼 하나를 주문하니 ‘J와 나 기준에서’ 2인분으로 먹기에도 매우 충분한 양이 나왔다. 다시 한번 유럽은 혼자 여행하면 안 되겠구나 느꼈다. 유럽 여행하면 먹는 게 가장 아쉽다더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맛있어서 다른 것도 먹고 싶은데 메뉴 하나에 적어도 1.5인분에서 2인분이라 여러 가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으니.


첫 식사와 함께 독일에서 내가 첫 맥주로 선택한 것은 Spaten의 ‘Radler’라는 맥주였다. 라들러라는 종류의 맥주를 처음 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는데 재미난 의미가 있었다. 이 맥주는 레모네이드나 소다와 같은 소프트드링크와 라거를 혼합한 음료라고 하는데 독일어로 ‘Radler’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술은 마신 후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이걸 마신 후에도 얼굴이 달아올랐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면 큰일 날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가벼운 반주를 위한 술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은 한국인들이 꽤 많이 방문하는 곳인지 서버가 주문을 받을 때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서툰 발음의 한국어로 반겨주었고,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서는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통해 낯선 곳에서 익숙한 느낌을 느끼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슈니첼도 이름은 낯설었지만 튀김이 얇은 돈가스 같은 느낌이어서 맛은 또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의 왕 돈가스 집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여유롭게 식사를 마쳤다.



이제 뮌헨에 온 주목적인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러 갈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후에는 거리에 사람이 많이 않았지만 행사장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많아지는 게 느껴졌다. 꽤 많은 사람들이 독일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우리도 기왕이면 전통의상을 입고 축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다음을 기약했다. 아마 여자 옷은 한 벌에 10만 원 내외 정도 했던 것 같았는데, 그래도 한복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긴 했다. 물론 비싼 건 그보다 훨씬 더 비싸 보였다. 어쨌든 전통의상을 입지 않고도 충분히 즐거운 축제였다. 행사장은 흡사 놀이공원이었다. 낮에 가니 더욱 그랬을 터인데,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꽤 많아서 단순히 술을 즐기러 온 축제 같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행사장을 그냥 둘러보고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각 브루어리의 ‘빅텐트’라고 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예약을 굳이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놓친 것이기도 했지만. 준비성이 너무 철저해서 예약을 했더라면 오히려 그 자리에만 매여 행사장의 여러 모습을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주량이 약해서 그 빅텐트 안의 기본 사이즈인 1리터짜리 술을 한잔도 감당해내지 못했을 게 뻔하다. 대신에 빅텐트는 이런 거구나- 쓱 훑어보고는 밖으로 나와 놀이기구를 탔다. 두 종류를 탔는데, 하나는 롤러코스터 다른 하나는 공중회전 그네였다. J가 놀이기구를 아주 잘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약간은 만만해 보이는 놀이기구를 탄 것이었는데, 그리 만만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롤러코스터는 생각보다 엄청 빠르고 강력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유유히 느긋하게 공중에서 돌고 있는 회전그네를 발견했을 때는 J가 ‘저 정도는 탈 수 있겠다’ 해서 탔는데, 막상 타니 꽤 빠른 속도에다가 꽤 높은 곳에서 돌아가는 것이라 은근히 무서웠다. 그렇지만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 회전그네에서 빨간 지붕들로 덮여있는 뮌헨의 전경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옥토버페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에서 우리가 마신 맥주는 사실 고작 호프브로이 가든에서(빅텐트가 아닌) 500ml짜리 맥주 한잔씩이었다. 나는 둔켈, J는 바이스비어를 마셨다. 우리가 맥주를 받아 스탠드 테이블의 한편에 자리를 잡으니 맞은편에 있던 커플이 ‘Cheers!’ 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잔을 부딪치고 나니 친근한 느낌이 들어 우리가 조금 전에 샀던 진저브레드를 꺼내 하나씩 권했다. 매우 달아서 그들이 맛있게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나눔이었다.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에서 나와 마리엔 광장으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왔을 땐 어느덧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는데 걷다가 문득 사람들이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건물이 눈에 띄어 지도를 보니 ‘Asamkirche’(아삼 교회)였다. 작지만 매우 화려한 교회였다.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어서 잠깐 들어갔는데 화려하고 중후한 장식들에 어딘가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앉아있다 보니 관리인이 곧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못 들어왔을 공간이었으니 운이 참 좋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샀던 유심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서너 시간 후에 켠 다음 핀넘버를 입력하면 작동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미 여섯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난 상태였다. 더 기다려야 하나, 어쩔까- 하고 있었는데 마리엔 광장 근처에서 마침 유심을 산 매장과 같은 체인점인 ‘보다 폰’이 보여서 그곳에 들어갔다.


J가 점원에게 영어로 유심칩을 다른 매장에서 샀는데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점원은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다른 직원에게 확인해보겠다고 하며 생각보다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소요되는 동안 점원은 우리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까지 너무나 친절한 외국인들만 만나서 독일에 대한 인상은 점점 좋아지기만 했다. 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유심 문제는 다행히도 잘 해결되었다. 우리는 다음으로 영국정원에 갈 계획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곧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우버 택시를 타고 영국정원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는 얘기도 나왔지만 이내 우리는 깔끔하게 영국정원을 포기했다. 이미 어두워진 뒤라 가도 볼 것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우리는 마리엔 광장에서 가볍게 시간을 보내고 버스킹 공연을 즐기다가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Laurin’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덤플링과 무슨 돼지고기 요리를 역시나 맥주와 함께 즐겼다. 첫 번째로 검색해서 가려고 했던 레스토랑을 실패한 후 근처의 적당한 곳을 골라 두 번째로 들어온 곳이었는데 괜찮은 곳이었다. 가격은 좀 비쌌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첫날 우리는 아무 계획 없이 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놀았는데 모든 것이 완벽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놀았기 때문이었을까? 이날 집에 돌아가 보니 남은 돈이 많지 않아서 J는 돈을 잃어버린 ‘줄 알고’ 말 그대로 울었고, 나는 J를 위로했다. 심지어 숙소에 현금 일부를 두고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걸 숙소 주인이 가져간 것 아니냐며 엄한 의심을 하기까지 했다. 나는 겨우겨우 J를 달래며 얼른 자자고 하며 간신히 함께 누웠는데, 훌쩍대던 J는 많이 피곤했는지 거의 눕자마자 코를 골며 나보다 먼저 푹 잠이 들었다. 걱정하느라 금방 잠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조금 전까지 울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쿨쿨대고 있어서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겼다.


우린 정산을 하기 전까지는 돈을 그렇게 많이 썼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약 100유로 정도가 비는 줄 알았는데 계산해보니 결국엔 그만큼 썼기 때문에 없어진 돈이 맞았다. 그 사실을 우리는 이틀 뒤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열차에서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돈을 펑펑 썼다고 울어버린 J를 평생 놀릴 거리를 갖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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