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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Oct 14. 2021

아우디의 나라 독일에 입성하다

인천에서 뮌헨까지(18.10.03.)


스물여덟 살에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기까지 나에게는 꽤나 긴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다. 막상 다녀오고 나니 왜 나는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진작 욕심을 내고, 더 용기를 내어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코로나로 인해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유럽여행이 요원하게 된 요즈음, 3년 전에라도 갔다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8년 이맘때의 여행을 그리워하며, 당시 연인이었고 현재는 남편이 된 내 최고의 여행 메이트 J와 함께 했던 여행기록을 이제야 꺼내어본다.




오후 1시 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8시경 집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사당에서 공항 리무진이 30분 간격으로 있었기에 편히 갈 수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한 J는 나보다 휴가를 사흘 정도 더 쓸 수 있어서, 홀로 먼저 부다페스트를 여행한 후 뮌헨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래서 홀로 여정을 시작했다. 날씨가 무척 맑아 ‘출국하기 좋은 날씨’처럼 느껴졌다. 설레는 마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드디어’ 말로만 듣던 유럽을 간다는 사실이 그때까지는 실감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유럽에 가는 것만 처음이 아니라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오빠가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던 날 배웅을 위해 인천공항에 딱 한번 온 적이 있던가. 아무튼 나는 출국이란 걸 그전까지 두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일본 오사카와 중국 상해에 가기 위해- , 두 번 다 김포공항에서 출국을 했었다. 인천공항은 넓었지만 길쭉한 구조였고, 안내판이 잘 되어있어 길을 찾기 쉬웠다. 다만 출국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데, 혼자 공항에 오게 된 탓에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던 점은 빼고는...

공항 지하의 은행에서 앱을 통해 환전 신청해두었던 유로 지폐를 수령하고, 수하물을 부치기 위해 항공사 카운터를 찾았다. 카운터를 찾는 것이 처음부터 안내판을 봤으면 쉬웠을 텐데 괜히 시간을 아끼겠다고 인터넷을 찾아봤다가 낭패를 봤다. 내가 타는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카운터 위치가 블로그에 쓰인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 사이 옮겨진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측 끝으로 갔다가 좌측 끝까지 다시 걸어갔다. 카운터 오픈 시간보다 훨씬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그래도 온라인 체크인을 해둔 덕분에 나는 상대적으로 짧은 수하물만 부치는 줄에 설 수 있었는데, 줄이 도무지 줄지 않았다. 그러다 한 승무원이 다른 카운터로 가라고 하여 다른 줄에 섰더니 금방 수하물을 맡길 수 있었다.

 

공항에 9시 30분쯤 도착했던가? 아무튼 서너 시간 정도 앞서 도착했지만 이것저것 생소한 출국 수속을 거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공항 내에서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기 위해 무슨 트레인을 탔는데, 참으로 신세계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공항에서 최초로 지하철을 도입한 사례라고 하는 글이 있었다. 탑승 게이트로 오자마자 면세점에서 사려고 계획해두었던 선글라스를 샀다. 크게 고민은 하지 않고 가격 할인 중이며 신상이고 무난한 디자인으로 나온 제품으로 직원이 추천해준 것을 바로 구매했다. 구매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글쎄, 5분쯤 걸렸나? 아무튼 그런 것치고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오래 고민할수록 마음에 드는 걸 더 발견하기 힘들었을 거다.


탑승시간은 1시간 가까이 남아있었고 슬슬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탑승게이트 사이사이에 카페들이 적잖이 있었는데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익숙한 파리바게트에 갔다. 빵과 샌드위치들이 먹고 싶기도 했지만 여행 가서 먹을 음식들을 생각하니 별로 끌리는 것이 없어 허기만 채울 겸 카페라테 한잔만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비행기에서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였다. ‘라이프’라는 의학드라마를 여러 편 다운로드하였는데, 내 취향이 아니어서 대실패였다. 비행기에서는 1편을 겨우 끝까지 보고 2편을 보다가 차라리 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꺼버렸다. 꾸역꾸역 좌석 화면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두 편정도 보다가 너무나 졸렸는데도 긴장이 되어서였는지 잠이 오지 않아 힘들었다.



 

기나긴 비행을 마치고 뮌헨에 도착했을 땐 밤 10시였다. 환승시간 2시간 정도를 포함해서 서쪽으로 오는 동안 실제로는 16시간이 걸렸는데, 시간은 고작 9시간 지나있었다. 뮌헨 시간은 한국보다 7시간 전이었기 때문이다. 길어진 낮을 견뎌야 해서 그랬는지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입국 수속을 하는데, 체구가 작은 동양인 여자가 혼자 와서 그런지 입국심사원이 꽤 까다롭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혼자 왔냐, 숙소는 예약했냐, 예약한 숙소 내역을 보여달라,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러 온 거냐, 뮌헨 일정은 며칠이냐, 그다음에는 어디 갈 거냐의 질문들을 모두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통과할 수 있었다. J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하물을 찾자마자 나가는 곳에서 J를 만나니 뮌헨 공항이 갑자기 전혀 낯선 곳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숙소까지는 거의 J의 손만 잡고 따라갔던 것 같다. 숙소 가는 길에 탔던 전철에는 옥토버페스트 덕에 전통 의상을 입은 취객들이 가득했다. J와 내 맞은편과 옆 좌석에도 취객이 앉았는데, 그들끼리 시끄럽게 법석 떨며 대화할 뿐이었지만, 비록 그 내용이 섹스를 하러 간다느니 등 야하기도 했다. J랑은 옆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며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혼자 있었으면 이 사람들이 나한테 괜히 집적대거나 시비를 걸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만약 첫 유럽여행을 혼자 오겠다고 좀 더 어렸을 때 고집스럽게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그때 이 낯선 풍경을 무서워하지 않고 새로움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잘 즐기고 올 수 있었을까?


지쳐있는 와중에도 오래간만에 만난 J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사실 겨우 나흘만이었지만 무척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려야 할 역을 한 정거장 지나쳐서 내리게 되었다. 전철에서 내리는 시간에 맞춰서 J가 우버를 예약해둔 상태였는데 기사에게 전화를 해보니 목적지를 변경해서 다시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바람에 요금을 좀 날리게 되었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이 다소 좋지는 않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온 차를 보니 무척 좋은 아우디였다. 역시 벤츠와 아우디의 나라구나 싶었다. 차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지만 단언컨대, 내가 그때까지 타본 차 중 가장 편안하면서도 멋진 차였다. 전체적으로 차가 크고, 뒷좌석도 편안했으며 앞좌석 중간에 있는 내비게이션 화면이 우리가 평소에 보던 내비게이션 화면의 2.5배 정도 되는 크기였다. (그때 탄 아우디 내부 사진을 찍어뒀어야 했는데, 사진이 없어서 안타깝다.) 차가 멋있어서 그런지 틀어둔 노래도 왠지 ‘힙’하게 느껴졌다. 나와 J는 그 차에 감탄하며, 돈을 조금 날렸던 조금 전의 상황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이내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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