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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Jul 06. 2024

오줌싸개가 될 것인가, 장애인 주차 위반자가 될 것인가

비 오는 날 수영장 갔다가 민폐녀 될 뻔한 썰

나는 화목 오전 9시 수영반 수강생이다.


비 오는 화요일 아침.

쏴아아아 쏴아아아

장대비가 내리는 중.


비 오는 날 수영하면 더 개운하겠다!

빨리 차에 타고 도로로 나왔다.


아. 맞다. 오늘 비 오는 날이지.


아파트 입구부터 수영장으로 가는 모든 길들이 꽉꽉 막혀있다.

신호 한 번이면 통과했던 교차로는 무려 네 번의 신호 대기 끝에 통과했다.

다들 비 오는 날이면 신발에 물 차는 것이 싫은 건지,

버스에서 내 다리에 다른 사람의 젖은 우산이 촵촵 달라붙는 것이 싫은 건지

엄청 차를 끌고 나오나 보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 지나도 도착을 못 하고 있으니

슬슬 빡친다.


9시 수업인데 9시 10분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다.

뱅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고 싶다.


주차장에 자리가 계속 없다.

뱅뱅뱅 돌고 있다.

화장실에 미친 듯이 가고 싶다.


10분을 지각했는데 주차장에서 10분이 더 지났다.


여기도 신발에 물 차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조리 차를 갖고 나왔나 보다.


지하 1층에서 세 바퀴를 돌다가,

지하 2층에서 네 바퀴를 돌다가,

다시 지하 1층에서 세 바퀴를 돌았다.


나는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데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때마침 나오는 어떤 차 자리를 단박에 꿰찬다.


아. 또 빡친다.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느낀다.

줄을 잘 서야 되는데!


주차장 자리는 계속 없는데

방광이 조여 온다.

어떡하죠!


시간은 9시 30분이 되었다.

9시 50분에 수업이 끝나는데. 이미 수업은 물 건너갔다.


그냥 집에 갈까 했는데

주차장에서 뺑뺑 돈 내 시간과 기름이 아깝다.  

게다가 집에 가다가는 가는 길 차 안에서 오줌을 쌀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어도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


이제 수업은 중요하지 않다.

내 오줌이 더 중요하다.

뺑뺑이를 계속 돌던 중 장애인 주차구역을 발견했다.


저기 대고 잠깐 화장실만 갔다 올까?


여기 내 차 안에서 오줌싸개가 될 것인가

장애인 주차 구역 위반자가 될 것인가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심각한 일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이 나이에 오줌싸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잠시 양심을 접고,

누가 사진 찍어 신고를 하더라도, 벌금을 내더라도

장애인 주차 구역 위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8만원짜리 오줌 싸러 가자!


중대결심을 하고

파란색 장애인 주차 구역으로 돌진하려는 순간,

아. 머리를 다 말린 우아한 중년 여성이

오리발과 목욕바구니를 들고, 가까이 있는 흰색 벤츠 앞으로 온다.


오! 주여. 영광 받으소서.





비 오는 화요일.

나는 오줌싸개가 되지도 않았고

장애인 주차 구역 위반자가 되지도 않았다.


수영 수업은 못 들었지만

내가 오늘 섰던 지옥의 문 앞에서

유턴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어정쩡한 시간에 들어가 붐비지 않던 사우나에서

뜨끈하이 온탕과 열탕을 오가며

개운하이 목욕만 하고 나왔다.



흐흐

수영 수업은 결석했는데

많은 걸 쟁취한 느낌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 하루 맞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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