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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Sep 25. 2024

우리 모두는 우울증에 빚진 사람입니다

우울증 없이는 예술도 문학도 없다



우울증은 퇴치해야만 하는 괴물일까?



계획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근심걱정 없는 삶이 우리에게 펼쳐진다면, 행복한 인생일까?

인생에서 고통을 제거시키면 그야말로 행복하기만 한 삶이 될까?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는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맞을 것이다. 현생에서 근심걱정 제로의 삶이란 없다. 또 그것이 행복한 삶인지도 잘 모르겠다. 지구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도 삶에 걱정도 어려움도 있고, 우울한 일들은 도처에 있을 것이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함께 있어야만 서로가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사이드아웃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우울도 나쁜 감정이라 구박하고 쫓아내기만 하기에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줄 필요가 있다. 우울이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만 주지는 않았다. 우울이 남긴 유산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우울한 사람은 예민하다. 예민한 사람은 우울에 빠지기 쉽다. 감성적이다. 이성적이라 주장할지라도 고통에는 민감하다. 고통을 소화하지 못하여 우울증이 된다. 우울증이 되어 더 고통스럽다. 고통을 머금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은 풀어낼 수밖에 없다. 표현에 의해서 풀어내어진다. 그렇게 아픔이 글이 되어 문학으로, 그림과 조각이 되어 미술로, 화음이 되고 음악이 되어 예술을 탄생시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여러 번 우울증과 조울로 입원치료를 받았고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자살했다. 형도, 누나도, 손녀도 자살했다. 어머니와는 평생 악연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싫어했고, 아버지의 자살도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던지, 헤밍웨이의 생일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살할 때 썼던 권총을 선물로 보내는 이해 못 할 행동을 한다. 헤밍웨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글을 마저 써야 한다며 "돈을 보내면 가족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하면서 가보지도 않았다. 강압적이고 센 성격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여자들과는 평생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여자에게서 조금이라도 강한 모습이 보이면 밀어냈다.

말년에는 우울증, 망상, 인지저하 등의 정신질환은 심해졌고 노환까지 겹쳐져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마지막 입원에서 퇴원한 지 6일 만에 자살했다. 퇴원당시 의사에게 "우리 둘 다 어느 날 나에게 내가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운명을 그는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헤밍웨이는 평생 전쟁을 쫓아다녔다. 여행과 술과 사냥과 운동과 낚시를 좋아했다. 마초적이고 정열적인 삶의 방식은 피할 수 없는 우울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작가로서의 인생은 그리 불행하지 않았다. 일찍 명성과 부를 얻었다. 고작 서른 살에 쓴 『무기여 잘 있거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 돈도 많이 벌었다. 50대 초반에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파리 리뷰> 인터뷰집의 첫 질문은 "글을 쓰는 시간이 즐거우신가요?"이다. 이 질문에 헤밍웨이는 "무척이요"라고 답한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늘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순간은 없었다고 한다. 글쓰기가 주요한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면, 죽음만이 글쓰기를 멈출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랬겠지만, 헤밍웨이도 글을 쓰는 것이 곧 존재의 이유였을 것 같다.


헤밍웨이는 말년에 글이 써지지 않는 고통을 가장 괴로워했다. 글이 잘 써졌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죽기 몇 달 전 썼던 글을 모조리 찢고 던지고 술을 마시고 또 글을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통스러워했다. 자살시도가 실패한 후의 그의 절규는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여실히 말해준다.


"이젠 써지지 않는다! 써지질 않아!"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이것이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 1952년, 『노인과 바다』에서.


폭풍 치는 바다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노인이 누구인지 우리는 안다. 모든 힘을 다해 잡은 상어가 형체도 없이 뼈만 남겨 들고 들어온 노인이 헤밍웨이 그 자신일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다에서 노인이 고기 잡는 이야기'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별 내용 아닌 그 소설에서, 노인이 하는 말 하나하나는 헤밍웨이가 세상에 외쳐대는 이야기 같다. 그것을 알기에, 힘없는 노인이 모든 힘을 다해 고기 잡는 장면에서 노인을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에 소년이 엉엉 울 때, 우리도 소년이 되어 같이 운다.


헤밍웨이의 삶이 고통 없이 평온하기만 했다면 『노인과 바다』는 없었고 노벨문학상도 없었다. 전쟁과 부상과 이별의 아픔이 없었다면 『무기여 잘 있거라』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없었다.


영광도 명성도 부도 있었지만, 결국 헤밍웨이의 작품을 빛나게 해주는 것은 헤밍웨이의 파란만장한 삶이다. 불행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당신의 삶에 고통이 있었으므로 작품이 더 빛납니다."라고 하는 감사인사가, 땅 속에 누워있는 그들에게는 영광이 될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우울증과 약물중독으로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고, 여러 번 실패했다. 반복된 정신질환으로 몸도 마음도 쇠락해 갔다. 동료와 가족들에 의한 강제 입원은 인간으로서의 가치 상실을 느끼게 했다. 외로움과 고통, 우울함은 모두 『인간실격』에 담겼다. 자기 파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허무주의의 문을 열었다.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소설로 쓰는 일본 '사소설'의 대표작이 되었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으로서의 자격 미달, '인간실격'으로 규정하고 자살로 삶을 마무리한다. 다자이가 생각한 삶의 끝이 이와 같아서 소설의 결말을 저리 했는지, 자신과 동일시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따라갔는지의 선후관계는 알 수 없으나, 다자이 오사무도 39살의 짧은 삶을 자살로 마감한다.




민음사의 『인간실격』의 표지 그림을 선택한 편집자는 상을 받아야 한다. 표지 그림은 에곤 쉴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다. 에곤 쉴레의 짧고 다난한 삶은 다자이 오사무와도, 요조와도 닮아있다. 

에곤 쉴레의 아버지는 철도 역장으로 일했지만, 매독에 걸리면서 신체와 정신건강이 점차 악화되었다. 쉴레가 15살 때, 매독의 합병증으로 아버지는 사망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족은 붕괴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아버지의 고통과 질병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은 어린 나이의 쉴레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입힌다. 불안, 고독,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우울함은 쉴레의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죽음과 여인> , 1915년


에곤 쉴레는 사실 나쁜 놈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조강지처 버리고 돈 많은 여자 찾아 떠난 놈이다. 연애는 너랑 하고 싶고 결혼은 쟤랑 하고 싶은데, 너랑은 헤어지고 싶지는 않다는 소리를 당사자에게 대놓고 해버린 나쁜 남자다. 어쨌든 부잣집 여인과 결혼했다.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꿈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으로 부인은 임신한 상태로 죽는다. 3일 뒤, 에곤 쉴레도 스페인 독감에 걸려 28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가족>, 1918

에곤 쉴레의 초기 작품의 사람은 왜곡되고, 앙상하고, 불안하고, 강렬했다. 결혼 이후 색채도 밝아지고 그의 그림에서 표현된 사람들도 조금씩 온화해지며 생기가 돈다. 작품을 완성하며 본인의 행복한 가족을 꿈꿨을 <가족> 작품 안에서의 그는 이전의 자화상처럼 병약하지 않다. 자신감 넘치며 당당하다. 그 후에 전개될 새로워질 화풍도 기대되는데, 너무 일찍 죽었다.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강렬하다. 고독하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욕망은 어둡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고립된 영혼과 우울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우울증으로 고통받았지만 찬란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는 너무나 많다.

전쟁과 질병은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냈고, 온전하지 못한 가족과 허술한 정서적 토대는 우울증에 걸린 예술가를 낳았다.


버지니아 울프, 브론테 자매는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다.

반 고흐, 뭉크, 베르나르 뷔페, 프리다 칼로는 불안하고 아픈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남겼다.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 나오면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현대로 넘어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

존 레넌, 마이클 잭슨, 장국영, 샤이니 종현...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픔 속에서 피고 졌다.


우리는 모두 우울증에 조금씩 빚지고 있다.

우울 없이는 문학도, 예술도 없었을지 모른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에 감동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그들은 고통 속에 살았지만, 고통은 창조의 원천이 되었다.


우리는 이들이 겪은 우울증과 정신질환이 인류에게 이토록 훌륭한 예술을 남겨준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의 실제의 삶이 영화나 소설 그 자체라 해도 모자람 없는 드라마인데, 그들에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선사하여 우리에게 위대한 작품을 남기게 해 준 못된 운명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내 인생이 이들처럼은 고통스럽지는 않으니 그것에 위안받고 또 감사해야 하는가?




우울증이 있어 이런 예술이 있지!  

하며 감사하기에는 지금 나도 우울하다. 나는 우울한 데다가 초라하기까지 하다.

헤밍웨이처럼 대단한 문체를 갖고 있지도 않고 반고흐처럼 엄청난 예술혼도 없다.

프리다 칼로가 겪은 엄청난 고통에 비하면 나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닌 걸 알지만 그걸로는 위로가 안 된다.

고통은 비교체험을 할 수 없어서, 내 옆에 암환자가 있다고 해서 내 손톱  가시래기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예술인들의 투지를 본받자!!!

우울하고 고독한 삶을 이겨내 보자!!!!

라고 하며 삶의 의지를 다지기에는,

이들은 너무 많이 자살했다.  


나는 저 정도로 우울하지는 않고 정신병동에 입원할 정도도 아니다. 죽고 싶지도 않고 권총도 없다.

그만두면 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주말만 바라보출퇴근을 반복하는 보통의 직장인일 뿐이다. 아무 생각 없는 조금 우울한 현대인이 예술가의 인생을 보며 위안받기에는 그들은 너무 위대하고, 멀리 있다.


단지 얻을 수 있는 것은 희망이다.

힘들고 우울한 중에도, 몰두할 대상을 찾으면 그것이 하나의 처방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우울했던 예술가들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픔을 잊게 해 준다면, 그런 것을 찾아냈다면 그것이 희망이다. 수많은 예술가들도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본인에게 딱 맞는 도구를 하나씩 찾았다. 그래서 인생을 바쳤고, 그 순간 아픔을 잊었고,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나도, 우울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우울할 때는 글이 조금 잘 써진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대충 알겠다. 우울하면 차분해지고, 생각도 천천히 하게 된다. 책이나 영화를 봐도 가슴을 콕콕 찔리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도 많아지고, 그걸로 글감도 얻어 글도 써 본다.


우리가 뭐, 대단한 예술가가 될 것은 아니니까.

더 깊어지지도 말고, 더 절망으로 가지도 말고.

한 번은 생각해 보자. 우울이 나에게 남긴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는 우울로 어떤 것을 남길 수 있는지.


나중에 좋아지면, 이런 쾌쾌한 기분은 느끼고 싶어도 못 느낄 수도 있으니까.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미 와버린 우울증 새끼한테 뽑아낼 수 있는 것은 다 뽑아먹고 버려보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발버둥 아닐까.


















다음 이야기 : (외전) 선생님이 우울증 걸려봐서 아는데

+ 우울증인 학생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

+ 우울증 걸린 경험까지 썰 풀 줄은 몰랐다

+ 솔직히, 니들 우울증이다, 공황장애다 할 때 그거 다 공부하기 싫어서 뻥친다 생각했어

+ 그런데 숨 안 쉬어지고 내 맘대로 안 되는 거 맞더라

+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 공부해라. 공부하자.

+ 국영수 말고,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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