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봉봉 Oct 03. 2024

내가 나만 생각하면 됐지, 뭐!

나는 나를 위하면서 살도록


 처음 우울증으로 글을 써봐야겠다 했을 때는 10개 정도의 목차가 전부였다. 이 글을 써서 내 우울증을 낫게 하겠다거나, 엄청난 마음의 치유를 해보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바람은 없었다. 우울증을 팔아 브런치의 유명작가가 되어보겠다거나, 책을 써보겠다 하는 목표도 없었다. 


 단지, 답답했고, 풀어야 했다. 내 마음이 미친 듯이 엉켜있어서 나도 정리가 안 되는데 병원이고 상담이 뭔 소용인가 싶었다. 내가 풀어내야 했다. 그래서 우울증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하나씩 조각내어 현재부터 과거까지 찾아가는 지도를 만들고, 하고 싶은 말들의 목차를 다시 만들었다. 줄이고 줄여 여기까지 왔다. 나조차도 지긋지긋한 우울증과의 여정을 오늘의 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막상 끝 내려고 하니, 버려버린 글 꼭지들이 자기네들을 살려달라 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실제로 숨겨놓은 것들 중에 더 쓰고 싶은 것들이 많다. 공개적인 글쓰기로 써도 적절한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서 포기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그곳에 다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정제해서 글로 나올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글에서 시리즈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글만 썼는데도 느껴지는 후련함이 컸다. 예고편도 없는 진짜 마지막인 이번 글을 쓰고 나면 그 후련함이 몇 배는 될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하다. 


 우울증 하나로 이렇게 많은 글을, 이렇게나 길게 쓸 줄은 몰랐다. 글을 쓰고 한편씩 올릴 때마다 나의 우울증도 한 챕터씩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도 글로 쓰면서, '자. 이건 여기서 마무리.' 하는 느낌으로 넘기고, 나를 도와줬던 것들에 대해서는 고마운 진심을 담아 남겼다. 남들이 쓴 우울증 수기를 읽을 때, 무슨 마음인지 너무나 잘 알겠어서 같이 아파했다. 최근의 어느 순간은 '맞아. 이러면 진짜 힘들지.' 하며 남의 일처럼 관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는데, 그때 조금은 괜찮아지긴 했구나 싶었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헉헉대며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에구. 한참 남았네. 안 됐다.' 하듯이. 나도 정상에서 한숨 돌리고 이제 내려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면, 너무 이른 판단일까. 


 하고 싶은 것이 전혀 없었다. 팔다리는 그냥 덜렁덜렁 달기만 하고 다녔다. 씻지도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것도 생겼고, 하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다 한다. 혼자 있어도 찜닭이 먹고 싶으면 배달시켜 먹는다. 요아정이 먹고 싶으면 또 시킨다. 예뻐 보이는 옷과 액세서리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휴직 중이라 옷은 필요도 없지만, 가끔 쇼핑몰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장바구니로 넣어두는 옷들이 생겼다. 수영도 하고 달리도 한다. 수영은 다음 주면 중급반으로 올라가고, 달리기는 5km 정도는 힘들지 않게 뛸 수 있게 되었다. 4월, 5월에 집 앞 빵집도 몇 번을 쉬면서 어렵게 갔는데, 그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이제 재미있는 것도 본다. 나는 솔로도 보고, 흑백요리사도 본다. 유튜브도 본다. 책도 많이 본다. 5월부터 책 어플에 기록한 책들이 지금까지 100권이 되었다. 인생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다. 6월에는 27권을 읽었다고 되어있는데, 거의가 우울증이랑 관련된 책이다. 내가 다 읽긴 했는데, 물리적으로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기억도 잘 안 난다. 하루종일 책만 읽었나 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안 되긴 하지만 일부러 느긋하게 움직이려고 하고 말도 천천히, 낮게 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할 일을 시간을 재면서 했다. 그래야 빨리 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 치우는데 지금부터 5분. 자. 스타트!" 이렇게 하고 집안일도 하곤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다 나를 괴롭히는 소소한 강박이라는 것을 알았다.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안 주고 안 받기로 했다. 그래서 집을 최대한 천천히 치운다. (왜냐하면 나만 집을 치우기 때문에 하기 싫기 때문인 것도 있다.) 밥도 반찬도 대충 한다. 한 끼에는 반찬 하나만 하고, 아이들이 라면 달라고 하면 선심 쓰듯 막 끓여준다. 라면이랑 햄이랑 콜라를 자주 먹어도 어린것들은 괜찮겠지 하고 준다. 불량엄마가 되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기로 했다. 

 책 읽고 글 쓰는데 빠져서 5분마다 학원 숙제 다 했는지 물어대던 엄마에서, 숙제는 알아서 하고 책 읽는데 방해되니까 들어가서 자라고 하는 요상한 엄마가 되었다. 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학원 안 다녀도 된다고 하는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학원은 계속 다닌다니 좋으면서도 실망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으려면 학교는 그만두면 안 되겠다는 노동 의지를 억지로 다지게 된다. 


 진지하게 그만둘까 생각했던 학교는 복직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노비로 좀 지내다가 45살, 50살에도 그만 둘 만큼 확신이 들고 좋아지는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가슴 뛰는 일이 생기고, 돈도 현재 월급이상 벌 수 있다면 그때 때려치우는 걸 고민해 보기로 했다. 교사는 겸직이 안 되는데 글쓰기와 책 쓰기와 강연은 거의 유일하게 허락되는 겸직이니, 이것을 취미로 삼은 것도 행운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을 더 잘 쓸 수 있을지, 어떤 것을 쓰면 재미있는지 눈 크게 뜨고 찾아보려 한다. 어쩌면 학교가 끊임없이 글감들을 제공해 줄 터이니, 계속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버킷리스트는 유치하다 생각했는데, 각 잡고 쓰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봤다. 가까이 있는 작은 것들은 빨리 이루고 싶고, 멀리 있는 큰 것들은 최대한 천천히 이루었으면 좋겠다. 더 큰 것들은 더 잘 준비해서 더 잘 이루고 싶다.

1. 신체와 정신
오리발 없이 접영 잘하기/ 올해 안에 10km 달리기/ 5km 30분 안에 들어오기/ 한라산 성판악 코스 도전하기/ 겨울 영실코스 한 번 더 가기/ 복근이랑 등근육 만들기/ 싱잉볼 명상하기/ 화나고 짜증 날 때 마음 관찰하기

2. 책과 글과 공부
책에 대한 책 브런치북 연재하기/ 독서 수준 높이기/ 독서 리스트 지워가며 읽기/ 소설 쓰는 법 공부하기/ 투고해보기/ 부모교육 공부하기

3. 가족
다정한 말투 쓰기/ 남편한테 잘해주기/ 딸한테 친절한 엄마 되기/ 아들한테 단호한 엄마 되기 

4. 먼 미래
출간 작가 되기/ 강사 되기/ 영국 1달 살기/ 연구년제로 1년 쉬면서 글쓰기/ 후배들이 연락해 오는 선배 되기/ 밥 잘 사주는 늙은 여자 되기/ 멋지게 퇴직하기/ 냉장고 텅텅 빈 삶 살기 

 

 적어놓고 보니, 별것도 없다. 안 하고 죽어도 별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것만 있다. 소박한 건지 야망이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돈은 좀 많았으면 싶은데, 월급은 빤하고 재테크에는 관심도 없어서 '100억 자산 만들기' 같은 것들은 꿈꾼 적도 없으니, 나는 현실적인 건지 멍청한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서 좋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마냥 기뻐하기에는 마음 한 켠이 찝찝하다. 

 나는 비겁한 교사다. 어쩔 수 없이 비겁한 교사다. 온전히 자유롭지도, 완전히 당당하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죄책감이나 후회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죽겠다고, 죽고 싶다고 하던 그 학생에게 내가 교사로서의 사명을 쏟아붓고, 더 열심히 했었어야 했냐는 후회가 매 순간 찾아온다. 몇 번의 사건으로 내가 느꼈던 극도의 불안과 공포의 순간을 떠올려보면 나는 할 만큼은 했다 싶기도 하다. 매일 3,4월의 악몽의 순간들로 돌아가본다. 그때 이랬더라면, 혹은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수없이 복기해 본다.


 그 학생에게는 미안하다. 내가 더 튼튼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고 고꾸라져 도망친 것이 미안하다. 나는 그 학생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 학생은 죄가 없다. 더 세련되게 이별하고 왔었어야 했는데, 학교의 여러가지 사정들이 그러지 못해 거칠게 마무리 하고 온 것이 못내 미안하다. 하지만 그 부모에게는 정말로 화가 난다. 자식이 그 지경이 되도록 몰랐던가, 모른척했었던가 하는 방임적인 태도에 화가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식이 학교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을 계획하는지도 모르는 채, 학교만 보내는 그 부모에게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 근 20년을 키워 온 자식의 이야기를, 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담임을 통해서만 들었어야 했는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무엇이 한 아이를 그토록 무서운 지옥에 빠지도록 했는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도 않고 답답하고 화가 난다. 화가 난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너무 했나'와 '누구라도 나였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사이에서 매일을 오간다. 그래도,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은 학교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4월 중순까지 한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의 그 학생의 나이스 누가기록은 A4용지 16쪽이었다. 현직 교사들은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분량인지 짐작할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겠다는 것을 느낀 순간은 거의 마지막의 누가기록의 문장들의 대상이 학생이 아니라, 나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였다. 그 문장들은 작년에 유독 많았던,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여러 선생님들의 마지막 기록과 닮아있었다. 내가 혹시 잘못되면 이 기록이 뉴스자료로 쓰이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힘들면 쉬거나 관뒀어야지.. 남의 자식 보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작년에 기사를 보며 혼자 읊조리던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갱이 되었다. 

 제정신이 아닌 고흐를, 자신에게 집착하는 고흐를 고갱은 매정하게 떠나버렸다. 고흐는 착하고 불쌍한 사람, 고갱은 그런 고흐를 버린 나쁜 사람으로 단편적으로 평가당한다. 고갱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고흐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고갱 편이다. 그게 고흐가 아니라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서는 떠나는 게 맞다. 내가 죽겠다 싶으면, 그 사람이 죽겠다 싶어도 어쩔 수 없다. 떠나야 한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해지기 전에 떠났다. 후회도 된다. 평생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담임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느냐는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도 죽을 것 같았으니까. 나는 성녀가 아니다. 


 사실 내년 복직도, 앞으로의 학교 생활도 걱정이 된다. 교복 입은 학생들을 예전처럼 볼 수 있을지,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서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담임을 영원히 안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때 다시 만나게 될 마음이 아픈 학생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를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또 다치는 일이 없도록, 방어막을 치고 행정적으로만 대하는 게 맞을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 학교는 우울하고 아픈 학생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다. 상상도 못 한 심각한 일들도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미친 듯이 더웠던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기상학자의 예상처럼, 올해 내가 겪은 일들도 그만하면 호시절 이야기였다 하게 될까 봐 두렵다.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라는, 밈처럼 떠도는 말이 있는데, 저 말이 딱 내 심정이다. 너무나 큰 펀치를 세게 맞았지만, 인생에 경고등 빡세게 한 번 맞았다 하고 다시 사는 수밖에 없다. 완전 무결한 인간은 없으니, 나도 실수하며 사는 그저 그런 인간들 뿐 하나라는 마음으로 할 일 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문득문득 후회는 할지언정, 나를 비난하며 위축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잘못한 것은 앞으로 더 신중해지면 된다 생각하며 보낸다. 끔찍하고 황당한 경험들도 언젠가는 약이 되어주는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나는 나를 위하면서 살아야겠다. 

나를 먼저 위하고, 남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야겠다.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이기심이 되지 않도록, 조금만 경계하면 된다. 

나를 지켜주는 마음의 방패로 이 말을 새기고 살아야겠다. 


"내가 나만 생각하면 됐지, 뭐!" 



















<에필로그>

우울한 이야기와 징징거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더라도 가끔가다 하나씩만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우울한 이야기들을 지금 다시 보니 정말 우울합니다. 그래도 그런 글들도 보면서 공감한다, 뭉클하다 해주신 여러분께 제가 더 많이 힘을 얻었습니다. 제가 시상식에서 상 받은 것도 아닌데, 에필로그 따위에서 수상소감 같은 것을 지껄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그냥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몇 분은 '커피 사드려야지'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꼭 사드릴게요! 

모두 모두 행복한 글쓰기 오래도록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24화 (외전) 선생님이 우울증 걸려봐서 아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