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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ki Sep 13. 2020

호기심 가득한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다

아이들에게 물음표가 필요하다

“아빠~ 저 폭포 봐봐~ 진짜 대에~박!”

몇 미터 앞서 걸어가던 아들이 갑자기 소니처럼 달려갔다. 우거진 숲이 하늘을 뒤덮어 안 보이던 수백 미터 폭포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눈앞에 등장했다. "우르릉~ 쿠아 왕~" 살아오면서 이런 초울트라 우주 캡짱 폭포는 처음이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곳 가까이 가니 물보라의 위력은 태풍 비바람만큼이나 강했다. 금세 온몸이 젖고 실눈조차 뜨기가 힘들 정도였지만 장엄한 대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음에 묘한 쾌감이 들었다.


하늘까지 솟은 듯한 장엄한 폭포를 한참이나 멍 때리듯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보게 된 아들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났다. 녀석이 폭포를 뒤로 한 채 근처 바위 위에서 물보라를 맞으면서 혼자 셀카를 찍고 있는 게 아닌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행 내내 웬만큼 감동적이거나 희한한 것이 아니면 아들은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폭포가 아이에게도 대단하게 느껴졌나 보다. 아이가 셀카에 이어 이번에는 폭포를 배경으로 나보고  혼자 전신을 찍어달란다. 이런 횡재가.. 덕분에 아이와 함께 평생 남을 인생 투샷을 남길 수 있었다. 경외심마저 생기는 거대한 폭포를 보게 되고 인생사진도 남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아들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전날 저녁 현지 가이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에 발동했던..




아이와 어른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호기심이 아닐까? 어릴 때는 모든 것이 궁금해서 물어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호기심도 질문도 줄어든다.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서는 호기심을 찾아볼 수 없다. 호기심은 젊음과 열정의 상징이다. 배움의 원동력이자 성장의 발판이다. 여행은 아이가 궁금해하는 호기심들로 가득 차 있는 보물섬과 같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이 최고의 여행을 만든다.



아이들은 점점 물음표는 줄어들고 느낌표만 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10대들의 여가활동은 대부분 소비적인 느낌표(!)만으로 채워지고 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 다양한 방문화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노래방, DVD방, 게임방으로 시작해 멀티방, 탈출방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문화와 유행 때문에 아이들은 더 이상 의문이나 궁금함, 호기심 등 물음표를 갖지 않는다. 가질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상과 환경은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귀찮게 고민을 왜 해?'라고 말하듯 디지털과 AI(인공지능)는 개인이 할 고민과 선택까지 모두 대신해주는 세상 아닌가. 또 한 가지 더 문제는 모두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적인 것이 별로 없고 모두 소비적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벌써부터 돈에 의해 움직인다.

학창 시절은 꿈, 진로, 사는 존재의 이유 등 진지한 고민과 물음표를 가져야 할 시기가 아닐까. 하지만 아이들은 스마트폰에서 재미를 쫓거나 모여서 인스타그램 카페 투어, 맛집 투어 등을 다닌다. 그조차도 자신들이 발견해내고 찾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아요’를 누른 남들의 경험만을 따라다니기에 바쁘다. 최근 진지하고 심각한 것들은 어떤 분야에서든 인기가 없다. 영화. 음악, TV 어디서든 빠르고 재미있는 것들만이 인기다. 이런 소비적인 느낌표들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장과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소비에 필요한 돈과 물질의 중요성만 편협하게 키울 뿐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 한참 전이다. 창의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유명한 산울림의 김창완 씨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중학생 때 사람들이 왜 사는지 너무 궁금해서 동네 시장에서 아는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붙들고 물어봤다고 한다. “아저씨는 왜 사세요?”, “아주머니는 뭣 때문에 살고 계세요?” 어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가서 공부나 해, 이 녀석아!” 아니면 “너도 커 보면 알아!”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삶에 대한 호기심이 책으로, 영화로 이어져 향후 자신이 만든 노래들의 가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산울림의 명곡 중 하나인 “청춘(靑春)”이 왠지 더 특별하게 들린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https://youtu.be/yodXsojRrqI


아이들이 물음표를 가질 때도 있다. 하지만 모두 실용적인 것들 뿐이다. 가성비 좋은 식당, 쇼핑 최저가, 단기간에 토익점수 올리는 방법 등.. 아날로그 시대를 조금이라도 겪은 부모세대들은 그래도 학창 시절에 인생의 의미 등 중요한 삶의 고민들을 했었다. 어른이 되고 바쁜 직장생활과 육아에 지쳐 잊고 살고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과 인생을 유 선생(유튜브)에게 배우는 아이들이다. 왜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도 SNS와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세대다. 사색이 사라지고 검색만 남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해보는 물음표(?)가 필요하다




호기심은 사고(思考)와 배움의 원동력이다


자동차로 치면, 호기심은 배움이라는 자동차의 ‘엔진’에 속한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차가 아무리 멋있고 비싸도 엔진이 없으면 가장 기본적인 ‘달린다’라는 역할을 못하는 의미 없는 고철이 된다. 엔진의 힘을 의미하는 마력과 토크가 강하고 셀수록 그 자동차는 뛰어난 차, 비싼 차가 된다. 더 발전하면 인간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주는 자동차가 될 수도 있다.(미래에는 자동차들이 날아다닐 테니 말이다)

또한 엔진은 관리도 중요하다. 적정시기마다 엔진오일을 보충해주어야 성능이 저하되지 않는다. 아이의 호기심도 마찬가지여서 떨어지지 않고 성장의 동력이 되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부모의 관심과 도움이 적절히 있어야 하는 이유다.


정작 호기심이 왕성해서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들은 치명적으로 호기심을 잃는다. 호기심이 있어도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하느라 지쳐서 질문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아이도, 부모도 공부의 목표는 반 1등, 전교 1등, 전국 1등이다. 딱 거기까지다. 목표를 이루는 순간 모든 배움과 사고가 멈춘다. 엔진이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중은 4% 이상으로 전 세계 2위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여태껏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왜 그럴까? 한계를 뛰어넘고 끊임없이 발전을 만들어 내는 호기심의 동력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족적을 남기고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이들의 공부의 원천은 모두 호기심이었다. 처음부터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다고 공부를 한 게 아니라 호기심을 따라 끝까지 파고들다 보니 그런 결과들이 나온 것이다. <오리지널 마인드>를 쓴 엘리너 와크텔은 세상을 바꾼 대가들의 공통점은 ‘반짝이는 호기심’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인류의 조상이 다른 유인원들처럼 나무로 올라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며 영장류 연구 이유를 밝혔다. 서구의 가장 위대한 과학 업적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는 그의 침팬지 연구의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는 아이의 재능 발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호기심’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아이의 '단순 호기심'을 잘 살려주면, 성인이 되어서도 '지적 호기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호기심의 표상처럼 알려진 회사가 있다. 모험과 도전의 상징이자 동물학, 지리학, 인류학 등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다.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들을 이끌어 온 회사의 슬로건은 ‘Live Curious’다.


부모는 아이의 호기심을 절대 쉽고 빠르게 해결해 주지 말아야 한다. 바쁘고 귀찮다고 스마트폰으로 정답과 결과만 바로 찾아주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을 더 키워주어도 부족한 판에 그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꺼져가는 호기심의 불씨를 살리고 키워주려면 무궁무진한 재미의 성냥들이 널려있는 넓은 세상으로 가야 한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호기심 DNA를 일깨워줄 곳으로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발을 내디뎌야 한다.


“난 별다른 재능을 갖고 있진 않았다. 단지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다. 부딪힌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신은 내게 민감한 코와 노새 같은 끈기를 주셨다.” -아인슈타인-




여행은 아이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무한 증폭시켜 준다


호기심은 분명 인간 본연의 본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보지도 않은 나라의 이름이나 지도만 보고 가슴이 뛸 리가 없다. 단지 처음엔 두려움이라는 것이 호기심보다 커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을 보면 세상을 여행하던 간달프가 돌아오면 호빗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뛰어나와 반갑게 맞이한다. 그의 세상 밖 얘기를 들으려고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운다.

영화를 보던 내내 간달프는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간달프가 매 번 여행을 떠났던 건 마을 밖에는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들이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와 같기 때문이었으리라. 여행은 호기심으로 출발하고 호기심으로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 나서는 보물 찾기가 아닐까. 

아이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주고 싶다면 그건 보물찾기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 셋째 날에 선택 코스 ‘서덜랜드 폭포’에 갔던 것은 100% 아이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전날 밤 현지 가이드가 밀포드 트레킹의 백미는 이 폭포라고 했던 한 마디에 아이의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최고 난이도 셋째 날의 코스를 완주하고 나서 아이는 다시 신발끈을 동여맸다. 아이는 자신이 결정해서 그런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앞장서서 씩씩하게 또 다른 오르막길을 다시 올라갔다. 왕복 2시간 코스로 생각보다 길고 먼 거리였지만 아이는 그 어떤 코스보다 잘 걸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발걸음이 결국 580m 뉴질랜드 최장길이 폭포를 만나게 해 주었다. 밀포드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진 이유가 이 폭포에 오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듣자, 아이는 폭포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도 관심 있게 보았다. 호기심이 얼마나 강한 열정을 낳고 탐구하는 힘을 만들어내는지 아이를 통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120년을 지나서도 아이를 폭포로 이끈 호기심의 힘


현지 가이드 왈, 이 코스를 최초로 개척한 도날드 서덜랜드 역시 이 폭포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얘기로만 들었다고 한다. 호기심에 이끌려 없던 길도 만들어내면서 이 폭포를 공식적으로 처음 찾아냈다고 했다. 밀포드 트레킹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인 이 폭포의 발견과 트레킹 코스의 시작은 한 모험가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호기심이 결국 자연과 인간의 공존공생이라는 문화적 창의성을 낳는 강한 모티베이션(동기, Motivation)이 되었다. 최초의 트레킹 개척자가 길을 만들어 내도록 이끌었던 건 '120년 전의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120년이 지난 후, 그 호기심이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한국에서 온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의 발걸음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자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위대한 업적이라는 동전의 이면은 단순하게도 아주 작은 호기심이었다.

야생 꽃잎이지만 입으로 빨아보면 단 맛이 난다는 뉴질랜드 가이드 말에 아이도 쪼~옥 힘내어 빨아본다.


밀포드 트레킹 코스에서 서덜랜드 폭포는 옵션 코스라 희망하는 사람들만 왔었다.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온 가장 힘든 트레킹 후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트레킹 코스를 끝내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 역시 너무 힘들어서 몸은 쉬고 싶었지만 마음은 은근 가고 싶어 아들에게 의향을 물어봤었다. 아이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렛츠 고'를 외쳤다. 왜? 전날 저녁, 다음 날 트레킹 코스를 미리 설명해주는 자리에서 현지 가이드형의 한 마디 말이 다시 심장을 뛰게 했기 때문이리라.

"그 폭포에 가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 거고,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겁니다."


감동의 물줄기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감동의 전류가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듯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 여기 안 왔으면 후회했을 거 같아~" "우리 찬돌이(애칭) 덕분에 여길 볼 수 있었네. 고마워, 아들~" 나 역시 엄지 척을 올리고 아들과 하이파이브를 쳤다. 아들의 감동의 전류가 하이파이브를 통해 내 몸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최고 난이도 코스로 가장 힘든 날이었지만 아들의 호기심 DNA 덕분에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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