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인생도 설레임, 경험, 나눔의 단계를 거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인생의 진짜 문제는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피터 드러커-
‘여행’이라고 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느낌 중 하나가 ‘설레임’이다. 어릴 적, 소풍 전날 밤이면 가슴이 뛰고 기분 좋은 흥분에 잠을 설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여행은 가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과 설레임에서 이미 시작된다. 여행지에서는 예상보다 못한 것에 실망하기도, 기대를 뛰어넘는 것에 감동하기도 한다. 다녀와서 정리하는 사진들, 함께 나누는 여행의 순간까지가 모두 여행의 한 부분이다. 여행은 준비하면서 한 번 하고, 가서 경험하고, 다녀와서 추억한다. 여행은 이렇게 세 번 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제대로 된 준비가 여행의 성공을 좌우한다
제대로 된 준비는 같은 여행을 가더라도 남들보다 2~3배 더 많은 것들을 얻게 해 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가진 지식의 넓이와 깊이만큼 보이고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똑같은 건물이나 유적지를 보더라도 준비하고 간 사람은 역사와 문화의 깊이만큼 크게 감동한다. 하지만 준비 없이 관광으로만 간 사람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별로네. 그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네.’하고 쉽게 지나치기 마련이다.
아이와 여행을 다니며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가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을뿐더러 교육차원에서도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는 모든 작품을 구경하겠다고 8시간이나 있었다. 하지만 사전 지식 없이 보기만 한 수백 점의 작품들은 모두 뒤섞여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근에 미국 LA의 ‘게티뮤지엄(The Getty Center)’에 갔을 때는 관심 있는 화가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갔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와 에두아르 마네의 생애와 작품을 공부하고 갔었다. 그랬더니 수백 점의 작품들 중에 정말 후광이 비치듯이 두 화가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 속 물감의 칼라와 붓터치에서 마치 그들의 생애가 보이는 듯 착각이 들기도 했다.
여행을 위한 준비는 가성비 좋은 맛집과 주관적인 노하우 정보를 얻는 것에 있지 않다. 진정한 여행 준비는 오감이 부유해지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여행지와 연관된 예술작품들을 찾아 미리 떠나는 여행은 여행 준비의 퀄리티를 한 층 높여준다. 아이와 LA 여행을 갈 때는 준비해 간 LA배경의 영화 ‘라라랜드’를 비행기 안에서 함께 감상했다. 영화 속에서 가려고 하는 장소가 나오면 캡처도 해놓았다. 며칠 후 그리피스 천문대에 갔을 때 아이에게 캡처해 놓은 영화의 한 장면을 다시 보여줬다. 장면과 실제가 정말 똑같은 것에 아이는 ‘우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비치보이스의 Surfin’ U.S.A. 를 들으며 갔던 산타모니카 비치 역시 잊히지가 않는다.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레임, 직접 경험, 돌아와 나눔으로써 세 번 하는 것이다
여행은 준비하면서 한 번 가고, 실제 가서 경험하고, 다녀와서 사진을 보면서 한 번 더 간다. 이 세 번의 여행에는 설레임과 최고의 경험, 그리고 나누는 추억들이 담겨 있다. 그저 예약하고 관광하다가 귀국해서 예쁜 사진 SNS에 올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국내건 해외건 짧은 여행이건 긴 여행이건 모두 똑같다. 아이와의 여행은 항상 준비할 것도 많고, 다녀와서 정리할 사진도 많다. 하지만 ‘여행은 세 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 과정들은 설레임과 추억으로 바뀐다.
첫 번째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고, 가서 할 여행을 미리 꿈꾸며 맛보는 것이다.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커져가는 설레임을 한없이 즐기는 것이다. 아빠와의 여행에서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는 여행 계획이 잡히면 바로 질문한다. “아빠! 이번엔 어디 어디 가? 거기서 뭐해? 오토바이(스쿠터) 또 탈 수 있어? 당구도 할 수 있어? 낚시도 해?” 예전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들이 설레임으로 쏟아져 나온다.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아이가 여행에서 좋은 기억으로 가진 것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내 친구 와이프는 명절 가족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족티셔츠를 준비했다. 온 가족이 가족티셔츠를 입는 순간 여행의 즐거움은 두 배 세 배가 된다.
진정한 여행 준비는 즐기면서 다양한 문화예술로 미리 맛보는 것이다. 예전에 홀로 쿠바 여행을 준비할 때 나는 쿠바와 연관된 문화예술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미국과의 수교 단절로 50년대에 시계가 멈춰버린 쿠바의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가이드북보다는 쿠바의 사진첩과 감성 에세이들을 읽었다. 쿠바 뮤직을 찾아들으며 호세 페르난데즈의 국민송 ‘콴 타나메라’부터 최근 살사 음악까지 다양하게 들어봤다. 쿠바의 대표 건축물인 아바나 대극장과 엘 카피톨리오(국회의사당건물)는 건축양식의 책을 통해 찾아보았다. 이렇게 준비하고 갔기 때문에 처음 도착한 아바나 공항에서부터 나는 모든 것이 낯설지가 않았다.
두 번째 여행은 준비를 통해 모든 걸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여행의 꽃이다. 준비는 끝났기에 오감을 활짝 열고 여행 공간에 푸~욱 빠지고 즐기는 시간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 준비하면서 꿈꾸고 그렸던 순간이 나오면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예상이나 기대와 전혀 다른 실제를 만나게 되면 우연과 변수에 감사하며 그대로 받아들인다. 여행을 잘 즐기는 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함께 나눌 추억도 동시에 준비한다. ‘우리 너무 콘도 안에서만 있었던 것 같으니 나가서 액티비티를 즐기자!’ 또는 ‘계속되는 여행 스케줄로 지쳤으니 오늘은 안에서 쉬자’ 등의 조율을 한다. 두 번째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균형감 있게 하게 된다.
첫 번째 여행의 관점에서 보면 두 번째 여행은 준비하면서 예상하고 기대한 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기대 이상으로 감동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과장에 실망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감동과 실망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끼느냐이다. 동질감과 이질감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 좋은 여행이다. 라라랜드를 보고 갔던 그리피스 천문대는 감동 이상이었다. 천문대도 좋았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LA 시내의 야경은 잊히지 않는 영화 같은 장면이다. 아이가 애니메이션 코난을 너무 좋아해서 코난 마을 박물관을 찾아간 적도 있다. 아이는 신났지만 어른들 눈에는 ‘내가 왜 여기 와있지?’라는 실망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외진 지방 마을을 관광지로 만들고,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힘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세 번째 여행은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것이다. 여행 가방을 정리하고 평소대로 돌아오면 여행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들은 금세 잊혀진다. 여행에서 받은 힐링과 기억들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여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뿐 아니라 준비했던 자료들도 함께 정리하면 더 좋다. 여행의 시작과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첩이나 스마트폰 앱으로 정리해서 오감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여행이 경험 공부라면, 세 번째는 복습과 같아서 절대 잊지 않고 각인되게 해 준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처음 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엄마도 부모님들도 아이가 여행을 잘했을지 궁금해하실 것이 뻔했다. 스마트폰 사진들을 TV로 연결해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더니 몇 장 지나가자 오히려 흥분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기는 어디고, 저 음식은 어떤 맛이며, 저 상황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었던 장면인지 말이다. 놀랐던 건 사진을 보며 순간순간 자기가 어떻게 느꼈는지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떤 상황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었다. 여행은 세 번째를 통해 진정 자신만의 것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세 번하는 여행을 통해 아이는 제대로 사는 인생 방법을 깨닫게 된다
여행에는 큰 계획과 작은 계획이 있다. 여행의 틀을 의미하는 큰 계획은 치밀하게 세우되 작은 계획들은 바뀔 수 있다고 여유 있게 보는 것이 좋다. 아이의 꿈도 최대한 크게 잡지만, 실현 방법은 작고 현실적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 아이 교육을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아이와 함께하는 교육’이 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세 번의 여행은 곧 아이와 함께하는 세 번(예습, 학습, 복습)의 교육이 된다. 세 번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여행을 경험할 때 아이는 세 번의 과정을 거쳐 제대로 살아가는 인생 방법을 깨닫게 된다.
①첫 번째 여행, 첫 번째 인생
설레이는 여행 준비처럼 미래를 설레임으로 바라보자. ‘설레이면 이기고 두려우면 진다.’라는 말처럼 미래는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따라 바뀌게 된다. 아이의 미래를 설레임으로 바라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와 부푼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보는 것이다. 부모가 미래를 그렇게 바라볼 때 아이도 미래를 설레임과 기대로 바라본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두려움으로 바라보면 아이는 공포로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공부 안 하고 너는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는 말은 미래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네가 여행하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잘 헤쳐나갔던 것처럼 이번 일도, 공부도 네가 어떤 결정을 할지 기대가 된다.’ 이 말에는 아이에게 힘을 주는 설레임이 있다.
②두 번째 여행, 두 번째 인생
여행의 꽃은 직접 경험이다.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은 모두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다. 내 몸과 오감을 통해 직접 경험한 것들만이 진짜 나의 것이 된다. 인생도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준비를 위한 준비로 시간을 모두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준비는 본 게임을 위한 것이다. 준비에서 힘을 다 빼면 본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준비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본 게임을 위해 적당히 준비하고 바로 시작하고 경험에 치중해야 한다.
③세 번째 여행, 세 번째 인생
세상에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이룩한 부와 지식과 업적을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사회 환원 재단을 만들어 50조 가량을 투입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지분 99%(약 52조 원)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대표 역시 미국 거대 백신업체로부터 1,000만 달러 인수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단 칼에 거절했다. 자신은 부자가 되겠지만 한국은 미국 백신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여행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여행에서 가장 좋았고 가장 멋졌던 최고의 하이라이트들만을 공유하게 된다. 세 번째 인생 역시 나에게 가장 귀하고, 멋지고, 좋은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이룬 가장 큰 업적과 부를 나누며 기쁨과 슬픔, 희망과 꿈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세 번째 여행을 잘하는 아이는 세 번째 인생도 쉽게 다가간다. 위대한 인생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냥 해~(Just do it) 실천 팁 : “여행 준비를 잘하는 방법”
하나. 객관적인 사실 중심으로 정보 수집하기
나만의 여행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타인의 주관적인 블로그는 독이 될 때가 많다. 객관적인 정보(영업시간, 휴무일) 중심으로 필요정보만을 습득하는 것이 좋다. 여행하는 나라, 도시, 지역의 공식 관광 사이트는 매우 유용하다. 주관적인 좋고 나쁨 없이 객관적인 정보들만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주관적인 노하우는 선별해서 참고하기
가끔 직접 경험해본 이들의 노하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가성비 기준보다는 안전상의 문제나 문화적인 기본 예의와 관련된 것들일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럴 때에는 경험 많은 이들의 노하우를 구한다. 블로그나 내용을 잘 읽어보면 초보자인지 프로인지 금방 구분이 간다.
셋. 여행의 목적을 생각하며 준비하기
나는 여행을 배움과 성장, 깨달음의 기회를 얻기 위해 간다. 실수나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재미있는 추억이 될지 오히려 기대를 갖는다. 그래서 혼자 여행할 때는 의도적으로 자세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구글이나 인스타그램의 사진도 잘 보지 않는다. 감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현지에 가서 찾아봐도 늦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