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일상을 통해 완성된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영원히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워진 나를 만나는 통로이며, 가득 충전된 에너지를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아네스 안-
여행지는 낯선 곳이다. 일상은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하는 행위와 일상에서 하는 행위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곳을 익숙하게 보면 두려움이 줄어들고 세상사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익숙한 곳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일상을 여행처럼 즐겁게 만들어 준다. 인생의 좋은 일과 나쁜 일도 여행처럼 바라보면 여유가 생기고 지혜가 생긴다. 아이와의 여행을 통해 부모는 아이 시절을 다시 보고, 아이는 부모를 통해 미래를 보게 된다. 여행과 일상을 하나로 볼 때 부모도 아이도 지금의 삶을 1cm 더 즐겁게 살게 된다.
여행은 일상을 통해 완성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2002년도 현대카드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 기여한 광고 카피다. 이 카피가 빅히트를 칠 수 있었던 건 ‘떠나라’에 있지 않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라는 말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공감했던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일상이 있기에 떠나는 여행이 공감과 설득력을 갖는다. 일상이 중요하다. 여행 전에 일상이 있고, 여행 후에도 일상이 있다. 비록 너무나 뻔한 여행지, 뻔한 루트와 음식들이더라도 여행 전 나의 일상이 어떠했는지가 중요하다. 여행 후 나의 일상이 어떠할지에 따라 그 여행은 인생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겪은 경험들과 배운 깨달음으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결국은 일상이고 일상의 삶이다. 여행을 통해 일상이 바뀌지 않고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여행은 그냥 단순한 경험으로만 그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진다. 일상을 통해 여행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할 때 그 여행은 일상으로 녹아들어 일상과 하나가 된다. 일상이 된 여행은 다시 설레임이 되어 다음 여행을 꿈꾸게 한다. 여행의 완성은 일상이다. 일본 정부가 미워하는 독설가이자 여행 마니아 후지와라 신야 작가가 쓴 <겪어야 진짜>라는 여행 에세이도 일상을 통한 여행의 재미와 통찰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일상에 변화를 주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여행의 완성이라는 의미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가면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길을 알려주는 작은 친절, 길 가의 들꽃 한 송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경험을 안고 일상에 돌아오면, 그 일상은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은 일상이 아니다. 일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관점이 바뀌어 일상은 여행의 연장선이 된다. 일상과 여행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져 ‘여행 = 일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 인생의 모든 순간은 여행이 된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그 여행자만이 낯설 뿐이다.’라고 했다. 여행자가 느끼는 낯선 땅이라는 것은 여행자에게만 해당된다. 현지인들에게 그 낯선 땅은 익숙한 일상이다. 결국 여행과 일상이라는 건 삶의 본질에서는 같은 것이다.
여행이 너무 좋을 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영원히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돌아갈 곳 없이 돌아만 다니는 사람을 우리는 ‘방랑자’라고 한다. 여행자와 방랑자는 다르다.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도 방랑자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것은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여행은 항상 일상으로 귀결된다. 1박 2일 여행이건 1년 간 세계일주 건 누구나 언젠가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진정한 여행은 ‘일탈’로 시작되더라도 ‘일상’으로 되돌아와 완성된다.
여행의 프레임은 삶에 변화와 지혜를 안겨준다
여행이 일상을 변화시키고 일상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같은 프레임으로 인생의 중요한 다른 것들도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서 <프레임>에서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정의한다. 일상으로 녹아드는 깨달음이 있는 여행의 프레임은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게 되는 독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게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얻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일상으로 완성되는 여행의 프레임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켜준다.
책은 곧 사람이다. 한 권의 책에는 저자의 수백 시간의 땀방울과 수년간의 고민들이 담겨 있다.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기까지 혼자 흘린 눈물과 깨달음이 가득 담겨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배우게 되듯, 독서는 여러 분야에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는 것이다. 책이라는 세계로 한 번 빠져들면 그 안에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이 시작된다. 눈으로 읽는 활자들은 머릿속으로 들어가 상상의 세상을 만들고 무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경험들과 만나는 순간 깨달음과 통찰력이 불꽃놀이처럼 터지게 된다.
독서의 반대편에서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게 만드는 천적이 있다. 스마트폰 게임이다. 부모들은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게임은 도전의식을 불타게 한다. 모든 게임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아이들에게 끝나지 않는 모험과 재미를 제공한다. 게임은 운동처럼 몸으로 땀 흘려가면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편하게 누워 화려한 시각효과와 멀티미디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높은 레벨에 먼저 올라가면 성취감과 함께 우월감도 느낀다. 게임이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의 도전 환경이라면 장점으로 볼 것들이 많다. 여행의 장점과 많이 닮았다는 점에서 해결의 기회가 있다.
기회는 아이가 여행을 게임처럼 경험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아이의 관심사를 게임으로부터 조금씩 옮겨갈 수 있다. 게임도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간접경험뿐인 게임은 여행의 직접적인 경험을 이길 수가 없다. 게임은 모든 것이 대리만족이다. 왕이 되어 타국의 영토를 빼앗고, 영웅이 되어 악당을 물리친다. 모두 디지털 화면 속의 간접경험이다. 매우 빠르고 휘발성이 강하다. 반대로 여행은 유사하면서도 모든 것이 직접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시시해 보여도 막상 자신이 그 상황의 주인공이 되고 체험을 해보면 간접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직접 경험과 직접 체험의 힘이다.
게임의 장점들을 모두 여행에 녹여 아이와 함께 게임 같은 여행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게임의 끝없는 레벨 도전처럼 매일매일 새로움이 있는 여행 일정을 만든다. 레벨 업을 이루면 아이템을 받듯, 도전을 마치면 상응하는 상을 준다. 게임의 주인공은 아이다. 여행도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게임하듯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게임은 혼자 하는 것보다 네트워크로 함께 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여행도 친구와 함께 하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보단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여행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된다. 일상을 여행처럼 보는 프레임은 가까이할 독서나 멀리해야 할 게임에 지혜를 주고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준다.
여행과 일상, 낯섬과 익숙함이 하나가 될 때 즐거운 삶을 살게 된다.
여행과 일상은 낯선 것과 익숙함의 관계이다. 여행이 일상에서 완성되는 건, 낯선 것에서 익숙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익숙함은 통찰력이 되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해 준다. 사람 사는 이치는 같음을 깨닫게 해 주어 낯선 곳이 익숙하게 보이게 된다. 시공간이 다르고 문화와 역사만 다를 뿐 사람들이 친근하게 보이게 된다. 내가 사는 동네로 외국인이 여행을 와서 나를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자. 그 여행자의 눈에는 낯선 것들 투성이겠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익숙하다.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여행자의 시선으로 주위를 다시 바라보면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안겨 준다.
익숙한 곳을 낯설게 바라보면 묘한 쾌감이 여행의 감각처럼 다가온다. 일상 여행이다. 여행자의 시각으로 동네를 다시 보면 안보이던 소소한 것들이 다시 보이게 된다.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동네를 여행하듯 산책할 때마다 놀라게 된다. 우리 동네에 식당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오래된 서점과 와인바도 보인다. 여행자가 되면 간판 하나도 새롭고, 소소한 즐거움과 영감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바쁨으로 지나치던 익숙함들이 때와 관점을 바꾸어 여행하듯 바라보면 새로운 여행지의 풍경이 펼쳐진다. 익숙한 곳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상 여행은 삶에 잔잔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아이 손을 잡고 동네와 도심 속 일상 여행을 많이 다녔다.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전통시장이 있다. 300미터가 넘게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시장의 물건들은 아이에게 호기심과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안 먹어본 호떡을 사 먹고 꿈틀대는 물고기들은 해외 현지 시장과 다르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로컬 시장 일상이 내가 사는 동네의 전통시장에서도 여행처럼 벌어진다. 갑자기 물건 하나하나가, 음식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인다. 아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일상의 삶이 여행으로 찾아들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매 년 봄, 가을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축제들이 펼쳐진다. 수년 전 광화문과 종로거리가 차 없는 거리가 되고 노상에서 세계문화축제가 펼쳐졌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전에 내려 따릉이 자전거를 대여했다. 평소 차나 버스로만 다니던 길을 따릉이로 골목골목 탐험하듯 지나갔다. 차로만 익숙하던 광화문 자동차 길을 자전거로 가는 것은 나조차도 새로운 낯섬이었다. “아빠! 찻길을 자전거로 달리니까 완전 신나~” 왕복 10차로 광화문 도로 한가운데를 자전거로 달리는 아이도 신이 났다. 익숙함에서 하나만 바뀌었는데도, 그 어떤 해외여행 못지않은 즐거운 일상 여행이 되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낯선 곳을 익숙하게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아이와 함께 홍콩의 도심으로 여행 갔을 때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여행을 했었다. 가족들이 나른한 아침잠을 즐기는 사이, 숙소 주변을 둘러볼 겸 아침 조깅을 나갔었다. 홍콩 침사추이 나단도로를 따라 조깅하며 홍콩 시민들의 일상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출근하는 사람들, 아침식사를 파는 노점상들, 공원에서 체조하는 노인들의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근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그들의 일상과 하나씩 겹쳐졌다. 분명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었지만, 그들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낯선 여행에서 만나는 일상의 익숙함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영감을 주었다.
아이와 함께 갔던 홍콩 여행은 아이에겐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갔던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처음 보는 세상에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에게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피크트램은 신기한 열차였다. 홍콩 오션파크의 산을 넘고 바다를 보는 케이블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물어보았다. 하지만 4살짜리 아이의 대답은 어이없음의 끝판왕이었다. “내가 잤던 침대가 젤~루 좋았어!” 그 멋진 홍콩 야경과 열차, 케이블카, 옛날 선박 뭐 하나 익숙한 것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는데, 고작 침대라니.. 아이가 잤던 침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서양식 아기 침대였다. 작아서 발도 삐져나오는 것이었다. 아이가 감동받고 좋았던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라 여행을 통한 특별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시각과 눈높이에서 보면, 여행과 일상은 별반 차이가 없다. 여행 가서 아이들이 하는 것은 일상에서와 다를 것이 없다. 먹고 자고 노는 기본 행위에는 변화가 없다. 또한 일상에서도 여행 간 듯이 노는 것이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더 그렇다. 여행은 일상을 통해 완성된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 때 여행과 일상은 하나가 된다. 낯선 곳을 익숙하게 보는 것은 현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준다. 익숙한 곳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은 일상을 여행으로 승화시킨다. 여행과 일상, 낯섬과 익숙함을 하나로 볼 때 우리는 매일을 여행처럼 조금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