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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페이로 얻은 것들

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09 - 인턴 공무원

by 봄바람

서빙알바과외까지 하며 엘셋을 준비한 뒤, 나는 로스쿨 합격결과를 기다리는 기간에 미국 네바다 주 법무장관 오피스에 소속되어 있는 팀에서 인턴을 하기로 했다.


정말 "인턴" 이라서 지원을 하고 합격한 뒤로 나는 돈을 (단 1달러도) 받지 않고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생각하면 가스비도 나오지 않고 점심조차 내 돈으로 스스로 내고 먹어야 하는 정말 무료 봉사 수준이었다. 심지어 집과는 차로 40분 거리에 있던 곳이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굳이 인턴일을 하게 되었던 것은, 1) 무료하게 매일을 보내는 것 보다 뭐라도 경험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고, 2) 로스쿨 나오고 나서는 어마어마한 학자금을 갚아야 하니 로펌에서 일하는게 최상의 계획이었기 때문에, 공무원 (public sector)으로 일하는게 어떤지 알아보는 기회는 지금 아니면 쉽게 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정부와 일하는게 내 성격에 맞다면 로펌에서 일하는 것보다 10년 정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로스쿨이 학자금을 대신 갚아주는 제도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Screen Shot 2021-11-24 at 9.52.41 AM.png 살짝 위험한 Downtown Las Vegas지역 가로질러 들어가면 나오는 Nevada Attorney General's Office 건물


인턴 공무원의 하루

나는 일주일에 3일, 9시부터 5시까지 일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30분가량 타면 조금 위험한 downtown las vegas지역에 네바다 법무장관 오피스가 있었다. 인턴이었지만 오피스룩으로 매일 그 건물안에 들어가서 카드를 찍는 느낌은 나에게 활기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부서는 fraud unit으로 사람들에게 사기치는 사람들을 잡는 부서였다. 거기서 나는 그 부서에 소속되어 있는 변호사 두명과 많이 일했는데, 매일매일 그 변호사들이 시키는 일을 하는게 나의 "일" 이었다 (물론 일주일간 진행되는 일도 있고, 그런경우에는 변호사들이 월요일에 일을 주면 금요일까지 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일은 사람들에게 사기치는 사람들의 은행 기록을 가지고 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들어왔고, 어떻게 나갔는지 적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알고 있는 XX를 지금 네바다 법무장관 오피스가 사기혐의로 알아보고 있으니 일단 그 사람에게 돈을 그만 입금하라고 전화를 하는 일이었는데, 이 두가지 일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은 내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1) 사기치는 사람들은 진정한 욜로 (YOLO -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 뿐) 마인드로 산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이 사람들의 은행 기록을 정말 몇 천 페이지 본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자신이 잡힐 것을 알면서 사기를 친다. 아무도 나에게 이걸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은행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온다. 사기를 치고 돈이 입금되면, 그 돈은 바로 나간다. 일단 가장 흔하게 돈이 나가는 것은 여행이다. 돈이 입금되면 일단 크루즈 여행을 가거나 일등석 비행기 티켓을 끊고 유럽으로 여행간다. 비싼 차나 물건을 사면 걸렸을 경우 다시 정부에게 돌려줘야하기 때문에 바로 소모가 될 수 있는 사치를 정한다. 아주 가끔,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도 한다. 손자 손녀에게 용돈으로 몇백만원 정도 주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사기꾼들의 이런 기록이 한 5년 정도 되는데, 동일하게 돈으로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하거나, 은행에 맡기는 경우는 없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5년정도 사기를 치다가 잡힐 것을 알고 있으며,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5년만이라도 이렇게 살아보자 - 라는 생각으로 산다.


2)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자기가 사기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 놀랍게도, 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면 그쪽에서 먼저 대부분 자기가 사기를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런 느낌이 왔었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입금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할 필요도 없지만 절차상 그렇게 얘기를 하면, 이미 몇 달 전부터 입금하지 않고 있었다고 얘기를 해준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무력함을 느꼈는데, 왜 우리는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뒤늦게 알아차린 이후에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지 답답했다. 왜 더 발빠르게 사기꾼들을 직접 잡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며 자주 아쉬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부분은, 사기꾼들도 한 사람이자 "개인"이고, 이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정보를 받아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명분은 누군가 신고를 해야만 생기는 것이고, 그제서야 정부는 그 명분을 토대로 은행기록이나 다른 기록들을 받아낼 수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야 내가 지금 사기를 당하고 있구나 알아챈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은 어떤 사람들은 "이게 사기인가?" 하는 낌새가 초반에 몇번 있었지만 신고를 하는 순간 만약 아니라면 일이 커질까봐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화를 여러번 하고 나서 느낀 점은, 일단 신고는 무조건 하는게 좋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그 신고를 받고 나서 일을 얼마나 빠르게 진행시킬지는 모르지만, 정부도 기록들을 받아보고 사기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투자였다면 그렇게 판단하고 신고자에게 알려드리기 때문에 만약 조금이라도 사기일 것 같은 걱정이 든다면 신고를 하는게 좋다.


일하며 배우게 된 나

무료로 일을 했었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이 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턴으로 일하지 않은 날들은 서빙알바와 과외를 계속했다). 이 시리즈의 테마이기도 한데, 일단 뭐든 경험해 보는게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훨신 좋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된다.


은행 기록들을 보면서 저렇게 진정한 욜로마인드가 무엇인가,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과연 무엇은 꼭 해보고 싶은가, 많은 것을 느끼긴 했지만 내가 해야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정말 지루하게 모니터 앞에 타자를 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느낀 것은, 나는 이런 지루한 일도 "일"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변호사들이 기본적으로 친절했기 때문에 일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물론, 이 일을 즐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주일에 3일 일하는 제도 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는 상황에서 같이 일하는 변호사들은 오후 2시에 가끔 퇴근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나도 빨리 일을 끝내고 밖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내일"은 일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도와줬고, 그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일식집에서 서빙알바 할때는 취미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일주일에 3일 일하는 직업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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