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11 - 대형 로펌 인터뷰 기간, OCI
벌써 5년이 넘은 일이다. 다시 돌아보면, 그때만큼 즐겁고 치열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20분 안에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일.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로스쿨 1학년이 끝나고, 여름 동안의 인턴일도 끝났다. 여름 동안 로스쿨은 우리에게 OCI (On Campus Interviews - 우리 학교는 On Grounds Interviews라고 OGI라고 불렀다)를 위해 학생들 마다 20-25개 정도의 로펌 인터뷰를 잡아주었다. 이 인터뷰 시즌은 (내 기준으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취업 과정인데, 학생이 직접 로펌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잡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로펌들과 직접 스케줄을 맞추며 학생들을 위해서 인터뷰를 다 잡아주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이 클래스, 저 클래스 로펌들이 인터뷰를 설치한 곳을 돌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인터뷰는 로펌 하나당 20분씩 하고, 로펌의 한 오피스당 스무 명 정도의 학생들을 인터뷰를 본다 (한 오피스라고 굳이 얘기하는 이유는, 로펌마다 다른 지역의 오피스가 그 학교에 인터뷰를 보러 오는 경우 20명씩 더 추가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로펌은 매년 적어도 워싱턴 디씨 오피스와 뉴욕 오피스에서 버지니아 로스쿨에서 오피스 당 20명씩, 총 40명을 인터뷰를 본다). 이 OCI의 인터뷰들을 스크리닝 (screening)이라고 흔히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스크리닝 인터뷰가 끝나면, 빠르면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콜백"을 받기도 하고, 늦으면 몇 주 후에 받기도 한다. "콜백"이란, 이렇게 20분 동안 하는 인터뷰 말고 직접 로펌이 있는 해당 도시와 건물에 들어와서 그 로펌에 있는 변호사들 4-5명과 총 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보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그렇게 콜백을 끝내면, 여기서도 빠르면 돌아가는 길에 바로 "오퍼"를 받기도 하고 늦으면 한 달이나 심지어(!) 두 달 뒤에 오퍼를 받기도 한다. "오퍼"란, 내년 여름에 우리 로펌에 summer associate (인턴 같은 포지션이다)으로 와달라는 제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오퍼라는 생각을 하며 멘탈 관리를 하는 것이다. 내 옆에서 인터뷰를 잘 못 본 친구에게도, 혹은 인터뷰를 너무 잘 봐서 거만하게 구는 친구에게도, 해 줄 말은 이것밖에 없다. You only need one offer. 한 개면 충분해.
나는 인터뷰 기간 동안 총 24곳의 로펌들과 스크리닝 인터뷰를 봤고, 총 8군데에서 콜백, 그리고 5군데에서 오퍼를 받았다.
인터뷰들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로펌들은 내가 인터뷰 방에 들어오자마자 "do you have any questions for me? (나한테 할 질문 있니?)"라고 말하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20분 내내 다양한 질문을 생각해내려 애썼던 기억이 있다.
월요일은 첫 인터뷰 날이라 굉장히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필 첫날 두 번째 인터뷰에서 나는 뭔가 확실한 거절을 받은 것 같은 느낌에 집에 가서 펑펑 울었다. 그다음 인터뷰는 다행히도 2시간 뒤에 있었는데, 나는 한 시간 낮잠을 잔 뒤 블라우스를 다른 색으로 바꾸고, 머리카락도 다르게 정리하고 멘탈을 붙잡으며 인터뷰를 보러 갔었다. 그리고 그 로펌이 지금 일하는 곳이 되었다.
이렇게 인터뷰를 쭉 하다 보면 금요일쯤에는 인터뷰의 신이 된다 (인터뷰를 연달아 스무 개 정도 하면 그 어느 누구라도 인터뷰에 대한 감이 생긴다). 어떤 얘기를 해야 어떤 반응이 오는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인터뷰하는 도중에 얻었던 깨달음은 대충 이렇다:
1) 인터뷰는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곳이 아니다. 어떤 질문이 오든 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곳이다.
인터뷰를 24번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터뷰는 묻는 질문에 얼마나 맞는 답을 하는 건 절대 도움 되는 마인드셋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한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질문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로펌이 물어보라고 준 질문지에 써져있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해당 질문에 얼마나 "응답이 되는" 대답을 하는 게 정답이 아니다.
인터뷰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어떤 질문이 오든 내가 이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 "팀과 같이 일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서 얘기해보세요"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었나요" 혹은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었나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다 똑같은 답이 나올 수 있다. 인터뷰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 지금 내가 묻는 질문에 얼마나 정확한 답을 하는지 듣는 것보다 그저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내가 할 몫은, 이 20분이 끝났을 때 이 사람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인터뷰어가 결국 기억을 하는 것은 그 인상 깊은 이야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확신에 찬 눈빛이기 때문이다.
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수요일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그 로펌에서 인터뷰를 하러 온 변호사는, 내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한테 형식적인 질문 몇 개를 던지고,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반응이 시큰둥했다. 5분 안에 그는 나에게 "준비해온 질문 있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나머지 15분을 내가 어떤 질문으로 채우든, 이 사람은 나를 뽑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래도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적으로 쓰자 - 라는 생각을 했고, 그분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클라이언트들이 변호사에게 가장 찾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변호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Certainty (확신입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돈 쓰는 것만큼 아까운 것이 없으니까요."
놀랍게도, 목요일의 첫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맞이했다. "학생이 생각하기에 변호사가 가장 가져야 할 성질(quality)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제 변호사가 한 말을 생각하며 "decisiveness (확신)"이라고 말했다. 그 변호사는 그 대답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고, 나는 call back 디너에 초대되었다.
3) 최고의 인터뷰를 보지 않아도 된다. "비교적" 좋은 인터뷰이기만 하면 된다.
금요일의 인터뷰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나를 인터뷰를 보던 변호사와 악수를 나누며 인터뷰 방을 나오면서 나는 생각보다 잘 못 봤다는 생각에 찝찝해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녁을 먹으러 갈 때쯤, 그 로펌에서 콜백을 스케줄 잡으러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나중에 그 변호사님이 인터뷰 봤던 학생 목록을 보니, 내가 수업을 같이 들었기 때문에 얼굴과 목소리 정도를 알고 있던 학생들이 꽤 있었다. 굉장히 신기하게도, 그 변호사가 인터뷰를 봤던 학생들은 조금 소극적인 쪽에 속했던 학생들이 많았다. 내 인터뷰 전략은 그런 느낌과 대조되는 "밝고, 에너지 있고, 일 열심히 하는" 이미지로 세팅을 했기 때문에 어쩌면 나의 기준에 만족스럽지 않았던 인터뷰였어도, 그 변호사에게는 그날 조금 더 기억에 남는 인터뷰 었던 것 같다.
4)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된다.
이것은 사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콜백 인터뷰의 경우 같은 이야기로 나의 가장 큰 장점은 항상 보여줘야 된다는 것이다. 콜백 인터뷰의 경우, 나를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다 달랐지만 그분들 모두가 같은 로펌에서 근무했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4명의 변호사들 모두에게 얘기를 하면 그들이 나에 대해 얘기할 때 "얘는 이 이야기밖에 없나"라는 생각을 할까 봐 억지로 인터뷰마다 다른 이야기로 나의 다른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정확히는 내가 지금 일하는 로펌에서 인터뷰하는 입장이 된 다음에 알게 된 것은), 인터뷰에 대해 피드백을 로펌에 보내기 전에 같은 후보자를 인터뷰했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인터뷰를 보고 나서 거의 바로 피드백을 보내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해야 하는 말, 꼭 알려줘야 하는 스토리는 누구에게든지 꼭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5) 말은 나만 하는 게 아니다.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말은 나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나를 어느 정도 보여줘야 하지만, 내가 상대방을 읽고 그 사람이 나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게 하는 것도 하나의 스킬이라는 것을 배웠다.
콜백 인터뷰 중 꽤 차갑고 까다롭다고 소문난 여자 파트너가 있었는데, 나는 그 파트너와 얘기를 하다 그 파트너가 최근 했던 몇 가지 일에 대해 물었다. 그 파트너는 "아 정말 미친 듯이 날 바쁘게 잡아 삼킨 일이었지"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데 미소를 지으시면서 얘기를 하시잖아요 (but you say that with a smile)" 나도 웃으면서 말을 건네니, 그 파트너가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하는 자세로 바꾸며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있잖아, 사실 나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거든."
그 말 이후의 인터뷰 내용은 사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이 파트너와 나는 30분을 훨씬 넘게 "수다"를 떨었다는 것 밖에.
인터뷰 기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첫 콜백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걸려온 전화를 받았던 때이다. 2시간 동안 인터뷰를 계속해야 하는 첫 번째 콜백이었기 때문에 잘했는지 살짝 긴장이 되었었다. 정장 재킷을 벗고 조금 더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할 때쯤 나를 로스쿨에서 처음 스크리닝 인터뷰했던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고 콜백에서 나를 봤던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신들이 첫 콜백인걸 알고 있지만 다른 로펌들과 인터뷰하는 동안 자신들을 계속 기억해달라고 했을 때 기분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전화를 끊고 엄마 아빠한테 바로 전화하며 일단 한 곳에서 오퍼는 왔으니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기도도 정말 감사하고 하나님께도 너무 감사하다고 흥분하며 말하던 경험은 아직도 가끔 "초심"을 생각하며 돌려보는 기억이다.
이런저런 고민들 끝에 결국 그 로펌에서 일하지 않고 지금 일하고 있는 로펌을 선택했지만,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뉴욕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로 일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로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