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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Nov 13. 2021

좋은 과외선생님

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08 - 과외선생님

아이는 생일에 무엇을 받고 싶은지, 엄마 아빠한테는 무엇을 부탁했는지 10분째 얘기하고 있었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진작에 아이가 하는 말을 멈추고 수업에 다시 집중하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에너지를 아끼자는 이기적인 결정을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좋은 과외선생님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도서관에서 스터디룸을 항상 잡았다


일의 시작


목표는 3개월 안에 한국에 가서 엘셋(미국 로스쿨 시험) 학원의 여름 코스를 듣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안에 돈을 모아야 했는데, 스시집 서빙 알바와 함께 과외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가기 전, 고등학교 때도 몇 번 과외를 했었고, 대학교 다니면서도 방학 동안 집에 돌아오면 가끔 족집게 과외를 했었다.


다음 카페에 과외를 한다는 광고를 올리니 며칠 안에 세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 숫자는 빨리 늘어났다.


3개월 동안 나는 라스베가스 어머니들의 입소문을 타며 10명 정도 가르치게 되었다. 


가격

한국은 과외비가 어떤지 모르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때 나는 나의 학력에 비해 꽤 저렴한 가격으로 돈을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들은 한 시간당 $30불을 받았고, 중학생들은 한 시간당 $40, 고등학교나 대학생들은 $60불을 받았었다. 주로 영어 독해 (reading comprehension)을 가르쳤고, 학생의 필요에 따라 수학이나 역사도 가르쳤다.


과외선생님으로 일한다는 것

요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트렌드처럼 유튜브와 여러 매체에 퍼져 나가는데, 나는 과외선생님들이야 말로 아주 예전부터 있던,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의 정석을 보여주는 직업이지 않나 싶다.


일단 일자리도 직접 발로 뛰며 구해야 하고, 일자리가 구해진 후에도 클라이언트 (학생과 학부모들)와 상담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상담을 한다. 그저 학교 숙제와 시험을 잘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는 선생님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선행학습을 원하는 것인지, 고등학생인 경우 SAT, SAT II, AP 등등의 여러 대학 입시와 관련된 과외를 원하는 것인지.


그렇게 상담을 끝내면, 각 학생마다 대충 커리큘럼을 만들고, 일주일에 언제 만나서 과외를 할지 정한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과외선생님이 되어 본 입장으로, 이걸 읽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일주일에 한 시간 한번 보다 가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무조건 일주일에 45분씩 두 번 이상을 추천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진도가 더디게 나가며, 숙제도 배운 것을 토대로 내줘야 하기 때문에 숙제를 내주는데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외울 단어 양도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나는데, 다음 주까지 단어 60개를 외워오라고 하는 것보다 다음 만날 때까지 단어 35개를 외워오라고 하는 것이 내주는 입장에서도, 외우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시험을 해보는 입장에서도 훨씬 부담이 덜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률 또한 후자가 훨씬 높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단어를 60-70개 정도를 외우게 되며 (만날 때마다 35개 중 30개 정도 외워온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단어를 20개도 외워오지 않는다 (부담이 되어서 아예 시작조차 무서워하는 것 같다).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은 과외선생님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때는, 내가 학생에 따라 수업에 대한 부담이 달라진 다는 것을 느꼈을 때다.


똑똑하고, 눈에 별을 박은 듯 똘망똘망하게 뜨며 책을 읽고 선생님을 쳐다보는 학생들은 어느 선생님들이나 좋아한다. 내 경우 아직도 기억나는 학생은 한국에서 겨울방학 동안 잠깐 미국에 들어와 미국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려고 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영어 배우는 것도 모잘라 좋은 과외선생님을 찾아 더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언어 학습력이 뛰어나서 나와 영어로 대화는 아주 쉽게 했으며, 독해력도 좋았으며 평소에 읽는 책들도 다 영어로 된 책이었다. 나는 그 학생을 보며 한국 대치동 도련님들은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실제로 한국으로 돌아가서 그 학생은 승마도 배우고, 중국으로 또 몇 개월 유학 가서 중국어를 배우는 준비를 했다.


그 학생을 가르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그 학생과 같이 학교에 제출할 에세이를 썼던 기억이다. 과학적인 내용을 에세이로 풀어서 교내 대회에 제출하는 에세이였는데, 에세이를 제출하고 몇 주 뒤, 그 학생이 전교인이 보는 가운데 상을 탔다고 나에게 자랑했었다. 보통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와서 단기간 머무는 학생들에게는 상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내가 그 학생과 같이 에세이를 쓰면서 "이건 어쩌면 상 탈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 학생이 생각해내고 말하는 내용이 기발했다. 


하지만 최고의 선생님은 아마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이끄는 선생님일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수업을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나 또한 많이 쳐졌고, 진도를 나가면서 써야 할 에너지가 두려웠다.


스시집에서 한 시간 일할 때는 9천 원을 받고, 과외를 한 시간 할 때는 많으면 60불을 받았지만, 차라리 스시집에서 6시간 넘게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많다.


진짜 잘 가르치는 선생님


내가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선생님으로는 자질이 없다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엄마를 보며 "정말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떤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약사로 일하던 엄마는 미국에 오면서 가정에 더 집중하셨지만, 항상 다시 일하고 싶어 하셨고 내가 대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수학 과외를 시작하셨다. 인지도를 쌓아야 하셨기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한 시간당 $20) 시작하셨는데, 몇 년 안에 엄마는 라스베가스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라스베가스 안 몇몇 고등학교 안에서도 언급이 될 정도로 유명한 과외선생님이 되셨다. 


우리 엄마는 "천재적인 수준"의 아이들도 가르쳐보셨고, 정말 학교 진도를 못 따라가서 "학교에서 칠판 보는 게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해달라는 학생들도 가르치셨는데, 내가 본 엄마는 그 어떤 학생을 가르치던 정말 똑같은 열정으로 가르치셨다. 사람이 한 시간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 있다면, 그 100을 다 쓰셨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나는 가끔 엄마가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엄마는 정말 목소리가 나갈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으며, 다정하면서 꼼꼼하게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아이들이 어느 수학 컨셉을 이해 못 하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끝까지 이해시키려고 하셨고, 절대로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랬기 때문에 학부모님도 우리 엄마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무리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우리 엄마랑 과외 끝나고 나면 과외가 너무 재밌다, 수학이 즐겁다는 얘기를 가족에게 돌아가서 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그게 이해가 되고, 내가 푸는 문제들이 답과 척척 맞는 그 즐거움을 엄마가 학생들에게 느끼게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엄마는 라스베가스 학부모님들에게 안부 카톡이 온다.


엄마가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꽤나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엄마에게 문자가 하나 왔다는 것이다. 엄마가 가르치던 학생 A의 어머니가 보낸 문자였는데, 학생 A의 학교에서 우리 엄마의 연락처를 물었는데 그걸 주어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문자였다. 엄마는 왜 학교가 엄마의 연락처를 찾는지 궁금해했고, 알고 보니 이 선생님은 엄마가 가르치던 학생 A가 갑자기 수학을 너무 잘해버려서 컨닝이나 다른 방법으로 성적이 좋아진 걸로 오해를 했었고, 방과 후에 불러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다시 시험 안에 있는 몇 문제 풀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학생 A가 컨닝했다는 게 아니라는 게 보이고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잘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학생 A가 과외를 받는다고 했었고, 그 선생님은 과외가 필요한 다른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서 우리 엄마의 연락처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이런 이야기 말고도, 사실 엄마가 학생의 인생을 바꿔 놓는 것을 너무 많이 봤었다. 정말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들도 엄마 학생이 되면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다 잘하게 되었고, 공부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멋진 엄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처럼 되고 싶다" 라기보다 "나는 절대 저렇게까지는 못 가르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정말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순수하게 그 배우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모든 학생들에게 주어진 시간마다 열정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하며 배우게 된 나:


과외선생님으로 3개월 간 일하며,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1) 돈을 많이 번다고 일이 할만한 것은 아니다. 

확실히 학생들을 7-8명 까지 보는 토요일 같은 경우에는 수입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나는 거의 매 시간마다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학생의 집중을 유지해 주는 게 힘들었으며, 매번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할 정도로 수업이 끝났다. 학생이 제대로 이 컨셉들을 이해했는지, 혹은 시험에서 잘 볼 것 같은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AP같이 "어떻게" 시험을 쳐야 하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족집게 과외는 부담이 훨씬 적었고 만족스러웠지만, 학교 진도를 따라가게 한다던가, 선행학습을 시켜줘야 하는 과외는 스스로 많이 힘들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차라리 스시집에서 6시간 이상 일하는 게, 이 한 시간을 견디는 것보다 더 마음 편할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2) 사람들과 잠깐잠깐 만나고 얘기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긴 시간 그 사람의 집중력을 끌고 가는 것은 힘든 것 같다.


나는 확실히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공간에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도서관에서 일했던 걸 생각해보면), 일을 할 때는 서빙 알바의 경우처럼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거리를 좋아하는 걸 깨달았다. 한 시간 정도 한 사람이 그저 나에게 "맡겨져"있는 것 같은 책임감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조금씩 내가 원하는 직업에 대한 윤곽이 잡히고 있었다.


분석을 하는 직업.

어느 정도 세상에 영향이 있는 직업.

적당하게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직업.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은 직업.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조금씩 스스로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이런 경험들이 법조계 안에서 어떤 직업을 골라야 하는지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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