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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Nov 12. 2021

손님, 무엇을 드시겠어요?

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07 - 웨이트리스

한시간당 9천원. 


팁은 저녁 마감 후에 계산해서 그 날 가져간다고 했다. 라스베가스 호텔 안, 그리고 호텔 주변에 여러 일식집이 많았지만 모두 새벽까지 영업하는 곳들이었다. 안전이 가장 중요했던 나는, 집 근처에 있는 - 10시에 마감을 하는 - 비교적 작은 일식집을 골랐다.


일 시작하기 전 나를 인터뷰 하신 사장님은, 대학을 졸업했냐고 물으셨다. 차마 대학교 이름은 말하지 못하고 동부에서 졸업했다고 말했다. 듀크대를 졸업하고 스시집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고려대나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빙 알바 구하는 것과 비슷했으니까.


일의 시작

스시집에서 일하고 깨달은 것에 대해 얘기하기 전, 어쩌다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스시집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는지 간단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단기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난 미국 로스쿨 지원에 필요한 엘셋(한국 LEET와 비슷하다)을 공부했다. 3개월 정도 공부한 후 10월에 보는 시험을 치자고 마음을 먹었고,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껴져서 시험 전날에 시험 보기를 포기했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2월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3월에 받은 점수는 예상 점수보다 현저히 낮았고,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엘셋을 준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여름에 한국에 있는 학원을 들으며 준비하기로 했다. 좋은 엘셋 점수로 좋은 로스쿨을 가는게 목표였기 때문에 (미국에는 상위 14개의 로스쿨들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 밑에 있는 로스쿨을 졸업하는 학생들 보다 졸업 후 직장을 가지게 되는 확률이 높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그것에 올인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금전적으로 도와주지 않겠다고 나에게 얘기했었고 나도 동의했었다. 나는 이제 성인이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게 도와주신것 만으로도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주셨다.


문제는 한국에 갈 비행기 티켓을 살 돈도 없다는 것이었다. 학원비, 비행기 값, 생활비 모두 계산하니 적어도 800만원 정도는 들어갈 듯 했다.


3개월 안에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을 해보니, 그렇게 단기간에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한인 신문과 라스베가스 커뮤니티 다음카페에 나와있는 구인구직에 써져있는 스시집 알바생 자리를 알아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영어와 수학 과외를 하기로 했다. 그 시간동안 공부는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고 느꼈다.


레스토랑 알바생으로 일한다는 것

가장 먼저 배운것은 테이블 닦는 것이였다. 첫 날, 스시집에 도착하자마자 사장님은 나에게 주방에 있는 걸레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고, 어린 아이 두명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테이블을 가르키며 닦으라고 했다. 집에서 테이블을 많이 닦아봤지만, 생전 모르는 남들이 남긴 밥풀들, 여기저기 흘려져 있는 음식 찌꺼기들을 걸레로 닦아내는 기분은 묘하게 꺼림직했다.


계산대 쓰는 방법을 배운 후, 기본적인 서빙 방법을 배웠다. 대충 이렇다:

1) 손님이 오시면 메뉴를 가지고 나가며 손님을 받는다

2) 테이블로 안내한다

3) 주방에서 앞접시와 수저 등등 가지고 나온다

4) 앞접시와 수저를 세팅한 뒤, 음료는 생각하셨냐고 물어본다

5) 음료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며 손님이 음식 고를 시간을 준다

6) 음료를 내며 음식 주문을 받는다

7) 음식 주문은 손님이 앉은 테이블 숫자를 기억하며 계산대에 입력한다

8) 입력된 음식 주문을 스시셰프와 주방에서 받는다

9) 음식이 나오면 음식을 전달한다

10) 음식을 드시면서 더 필요한 것 없나 보며 테이블마다 물이나 음료를 리필한다

11) 그 와중에 다른 손님들이 오시는지 지켜본다.

12) 손님이 음식을 다 드신 것 같으면 check를 드린다

13) 카드가 꽂아 있는 것 같으면 그 check를 가지고 온다

14) 계산대에 카드 계산 후, 팁을 위해 펜을 챙겨 다시 드린다

15) 팁이 적혀있는 종이를 다시 가지고 와서 계산지들을 모아놓는 박스에 넣는다


손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에는 냅킨을 예쁘게 모양잡아 놓다거나, 배달 나갈 패키지를 정리하기, 테이블 마다 놓여있는 간장을 리필하는등 생각보다 해야할 일은 많았다.


미국 레스토랑 서빙 알바 특성 상, 정말 신기했던 건 나의 시급보다 팁으로 받는 돈이 훨신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일하던 내내, 한시간마다 받았던 팁이 내 시급보다 적었던 적은 없었다 (물론 손님이 아예 없는 3시나 4시의 오후같은 경우 빼고). 계산해본 결과, 주중에는 한시간당 평균 15불(17,000)원 정도 받는 것 같았고, 주말에는 한시간당 평균 2만원, 정말 잘 되는 날에는 3만원 까지 버는 것 같았다. 


사실 일을 시작하고 가장 충격적인건 시작한 뒤 팁을 바로 받는다는게 아니였는데, 팁을 받기 까지 절차는 이랬다:


1) 스시집에 있는 메뉴를 다 외워야 팁을 받기시작한다 (50%). 그 전에는 출근을 하고 테이블을 맡아도, 전부 그 시간대에 일하던 스시셰프들과 다른 알바생들만 팁을 가져간다. 

메뉴를 다 외운 것을 인정받는건 스시집 매니저에게 테스트를 받는 것이었는데, 일단 모든 생선 종류를 일본어로 다 알아야 했고 (tuna = maguro, salmon = sake, yellowtail = hamachi), 주방 음식 (튀김류, 면류, 일본가정식 음식 등등)과 스시바 메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했으며, 우리 레스토랑이 가지고 있는 와인과(레드 와인은 pinot noir 이 있고 화이트 와인은 chardonnay가 있다) 일본 맥주 (sapporo, kirin, asahi)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부분은 롤마다 무슨 재료를 쓰는지, 어떤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다 외워야 했다. 예를들어 dragon roll은 롤 안에는 오이와 spicy tuna 가 들어가고, 그 위에는 eel 과 avocado가 들어가고, 맨 마지막에는 eel sauce가 뿌려진다 - 이렇게 말이다. 내가 일했던 스시집에 롤이 30개정도 되었는데, 여기서 재료 하나라도 틀리면 다음 날 다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마지막으로는 각각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들에게 권하면 안되는 메뉴를 외우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너트류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들에게는 당연히 너트가 뿌려진 메뉴는 권하면 안되었으며, 너트와 근접한 기름을 쓰는 것도 말씀을 드려야 했다).


나에게 스시집에서 일하는 목표는 무조건 돈이었기 때문에 학교 기말고사 준비하는 것 처럼 메뉴를 달달 외웠고, 시작한지 3일안에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기억한다. 사장님이 여태 자기 밑에서 일했던 사람 중 메뉴를 가장 빨리 외웠다고 했을때는 조금 뿌듯했다.


메뉴를 외운 후 부터는 팁을 50% 가져가는데, 이건 팁의 전체의 50%가 아니라 n분의 1을 한 뒤, 한명의 몫의 50%만 가져간다는 것이다.


2) 아침 저녁 연속으로 12시간 일해보고, 오프닝과 마감까지 하며 실력을 인정받으면 팁을 75% 받는다.

보통 알바생들은 오전 shift (아침 10:30 부터 오후 5시) 혹은 오후 shift (오후 5시부터 저녁 10:30까지)를 번갈아 가며 맡았는데, 팁을 75%까지 받기 시작하려면 하루는 연속으로 12시간 일해야 팁을 75%까지 받을 수 있었다. 오프닝이란 먼저 스시집에 도착해서 손님 맞을 수 있게 준비하고, 저녁 마감이란 스시집을 정리하고, 청소한 후, 팁 계산까지 다 하고 돈을 다른 알바생들과 스시셰프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까지 다 챙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도 그리 힘들지 않게 일주일 안에 75%까지 받았던 것 같다.


3) 다른 알바생 없이 나 혼자 스스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한 후, 실력을 인정받으면 팁을 100% 받게 된다.

어느 정도 알바생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 사장님이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금요일은 너무 바쁘기에) 하루를 고르신다. 나는 수요일이였다고 기억한다. 사실 사장님보다 더 깐깐하셨던 분이 매니저님이셨는데, 그날 저녁 마감하면서 "오늘 너가 하니까 너무 편했다" 라고 말해주신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행복


그 때 당시에도, 그리고 다시 돌아봐도 나는 스시집에서 알바생으로 일했던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공부도 안하고, 아침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차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운전해서 스시집에 도착 한 뒤 하루를 시작하는게 처음으로 내가 "스트레스"와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침 10:30분에 도착하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에 나온 "로 소우"라는 피아노 음악을 틀어본다. 그 음악과, 또 비슷한 조금 달콤한 류의 피아노 음악을 틀으며 의자를 다 내리고, 테이블을 닦는다.


청소가 다 끝나면 10:58분 쯤 계산대 앞에 서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보통 오전 11:30 까지 아무도 없어서 과외에서 애들이 가지고 온 숙제들을 그때 많이 봤었던 것 같다.


손님들이 조금 씩 오면, 손님을 맞는 것도 즐거웠고, 손님들이 맛있게 음식 먹는 것도 좋았다. (물론 진상 손님들도 가끔 있었다). 자주오는 손님들은 저절로 다 기억이 났고, 그 손님들이 먹는 것들이 조금 특이했다면 (올때마다 야키토리 4개는 꼭 시킨다던지) 그런 것도 미리 준비하거나 "그 때 드신거 똑같이 준비해 드릴까요" 이러는 재미가 있었다.


일하며 배우게 된 나

스시집에서 일했던 순간은,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하고 귀한 경험들 중 하나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나는 이랬다:


1) 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서빙하며 생각보다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흔히 서비스 직업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서비스 직업이 도서관에서 일하거나 리서치 보조로 일하는 것보다 행복하고 즐거웠다.


2) 내 취향을 공유하는 것 만큼 행복한게 없다.

스시집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게 가득히 틀수있었던 것이었다. 가게에 애정이 생기면서 나는 조금 씩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가게를 바꾸기 시작했는데, 어디서 온지 모르겠는 쓰다 만 펜들을 손님들에게 팁 적을때 주는게 싫어서, 사비를 써서 괜찮은 펜들을 사다놓았다.


손님들이 나의 취향에 반응하는게 즐거웠다. 사실 할수만 있었다면 그 스시집의 차 내는 잔부터, 그릇까지 모조리 다 바꿨을 것이다. 그래서 스시집에서 일한 뒤, 나만의 꿈이 생겼다. 언젠가는 내 취향이 가득 담긴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꾸미고, 컵, 그릇 등 모두 하나 하나 신경 쓴 곳을 만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예쁘고 힐링이 되는 시간을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고른 음악들로 손님들이 내 공간에서 만드는 추억을 싹- 포장시켜 드린다면, 그것만큼 행복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그럼에도 평생 할 수는 없는 일.

분명, 한시간당 2만원은 먹고 살기에 나름 괜찮은 돈이다. 그 날 그 날 살아가기엔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서빙이 흔히 서빙 "알바"라고 불려지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일단 "연봉"이라는 기준과 다르게, 내가 일하는 시간마다 돈을 벌기 때문에 하루에 돈을 벌 수 있는게 한정되어있다. 다른 사람들과 교대를 해야할 수 밖에 없고, 또 체력이 안되서 매일 하루 종일 일 할수도 없다. 또한 20대 초반에나 괜찮지, 30대 이후에는 피로를 견디지 못해 쉽게 할 수 없는 직업이다. 


이렇게 일을 하면 스시집에서는 하루 평균 10만원 정도 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매일 일하지 않았고 주 5회정도 일했던 것 같다. 이정도 가지고는 한국에 갈 돈이 모아지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스시집 알바와 과외를 병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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