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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Sep 23. 2024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아내는 외출하면서도 남편이 잘 지낼지 걱정인가 보다.

“염려하지 말고 다녀와!”

“내가 집안일 다 해놓을게”라며 건성으로 답했다.

그녀가 가고 난 뒤, 나는 배가 고파 달걀을 프라이팬에 터뜨렸는데 뒤집개가 보이지 않았다.

안주인의 명령만 듣는 조리 기구가 시작부터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숟가락으로 뒤적였다.

냉장고에서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 가지볶음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먹고 난 그릇은 주방으로 가져가니, 개수대가 용량 초과이다.

배도 꺼지지 않았는데 나는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아하! 비빔밥이 주부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건 다 이유가 있구나!’  

   

그릇을 세수시킨 다음,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화장실에 갔다.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밟아 허리가 나갈 뻔했다.

‘집사람이 목욕하고 나올 때, 물기를 닦으라는 잔소리를 한 것은 다 연유가 있구나!’ 

나는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걸레로 남아 있던 물방울을 닦았다.     


욕실에 나오니 이번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잠자리 허물처럼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과 양말, 앞뒤가 바뀐 속옷이 널브러졌다.

빨래를 둘둘 말아,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이상하게 이 노동은 할수록 일이 더 많아지고, 수습도 안 되냐!’

‘꿩 구워 먹은 자리는 재라도 있지’만 가사노동은 눈에 띄지도 않고 시간만 오지게 잡아먹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먼지가 폐로 올라오는 듯하다.

이젠 청소기를 돌려야 하는데, 손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주부가 허리 아프고, 손발이 저리 건 다 이유가 있구나!’

     

초인종 알람과 함께 그녀가 돌아왔다.

‘날 구하려고 치마를 입은 천사가 왔구나!’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은 아이 손처럼 그녀의 등장에 내 손부터 먼저 나갔다.

‘왜 이제 왔어’라고 하고 싶지만, 애써 태연한 척 그녀를 손등으로 도닥거렸다.

     

남편들이여! 아내와 싸우지 말라.

그녀가 파업하면 사는 곳이 시궁창이 되기 마련이다.

집사람이 빨간 머리띠를 두르기 전, 미리미리 집안을 돌보자.

쉬는 날이라고 소파에 쉬지 말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정리하자. 

    

성실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한 성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상의 역사는 안 보일 때 누군가의 노력에 달려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려왔을 뿐이다.

일상이 멋진 인생이 되려면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고마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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