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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Sep 19. 2024

잃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바닥 겸손해야 된다”

“그렇게 사슈!”

영화 〈타짜〉의 한 대목이다.

겸손을 강조하지 않아도 풍파가 닥치면, 그 말은 점점 진리가 되어갈까.

     

부산에서 살던 시절, 집 근처에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었다.

여름이 되면 튜브를 들고 우리 가족은 백사장에 갔다.

아내는 파라솔 그늘에 있고, 나와 아이는 잔잔한 파도를 타며 해수욕을 즐겼다.

인생도 잔잔한 물결처럼 순탄하게 흘러가길 바라지만, 바람은 이런 흐름을 바꾼다. 

처음 맞이하는 고난은 넘길 수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 고비를 부딪치면 그동안 자신을 지켜줄 줄 알았던 인간관계나 재산이나 권력은 지푸라기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다.

짠물을 먹으면 머리가 어지럽듯 이들의 배신에 얼얼하다.  

   

“왜 나만 환난에 들지”라면서 당신의 모진 운명을 탓하는가.

눈을 들어 바닷가를 바라보라.

당신 하나가 아니다.

많은 이가 급류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기 바쁘다.  

   

그러나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같은 파도를 맞더라도 누구는 더 빠르게 헤엄쳐서 파고를 넘고, 누구는 물속에서 숨을 참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곤경에 맞서든지 해답이 없더라도 참으며 풍랑이 지나가길 기다리자.     


물결이 세차게 흐르면 자연스레 옆 사람과 충돌할 수 있다.

칼과 칼이 만나면 홈이 나지만, 말과 행동이 마주치면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이때 감정의 날을 날카롭게 세우지 말자.

다른 이와 부딪치면 상처를 입는 건 당연하다. 

전자제품이 긁혀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가볍게 넘겨라.

“이깟 생채기가 뭐라고!” 하면서 이야기 속의 용사처럼 용감해지자.     


역경이 온다고 떠밀려 가듯 살아가지 말자.

그런 밑바닥에서 자기의 중심을 잡아라.

어려움이 주는 아픔에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 자인지 시험해 보라.

인간의 매력은 수없이 넘어지더라도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삼천 번은 넘어져야 비로소 일어설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너울을 잔물결로 변할 것이다.      

고난은 축복이다.


환난으로 많이 잃을수록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금전을 잃으면 건강에 감사하며,

건강을 잃더라도 아직 살아있음에 고맙고,

죽음이 다가와도 다음 세상의 희망을 품는다.

그런 다음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이.

쓸쓸하고 가난한 자가 내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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