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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Sep 30. 2024

과일은 물기에, 사람은 물욕에 부패한다

“저~ 결혼합니다”

얼굴만 알고 지낸 직원이 내 책상으로 다가왔다.

그는 청첩장을 건네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안내문을 받은 후 두 가지 생각이 찾아왔다.

‘사무실에서 계속 볼 건데, 안 내면 껄끄럽지 않을까?’

‘부조 문화는 관행인데 나중에 받으면 되잖아’라는 포장된 사회성이 먼저 찾아왔다.

‘결혼식을 빙자하여 사심을 채우려 하지?’

‘왜 그런 이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나?’라는 진지한 무례함이 나중에 들어왔다. 

    

축의금에 대한 논쟁은 빠지지 않는 뉴스이다.

‘적절한 금액이 얼마일까. 적게 내면 우정에 금이 간다’라는 다양한 논쟁거리가 존재했다.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자는 거르면 되나, 가까운 직장 상사의 경조사는 피할 수 없다.

으레 이런 일에 앞장서는 총무가 상급자보다 밉다.

이 행사를 자기 출세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동료에게 동참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는다.

직원들끼리 조를 짜서 축하금을 받고, 식탁을 정리하는 등 자신이 목적을 위해 여기저기를 챙기기 바쁘다.     


본디 부조는 노동력을 나누는 품앗이와 비슷하다.

혼인이나 초상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 친척들, 친구들이 같이 음식을 만들거나 상여를 메는 노동으로 갚았다.

노인과 같이 근력이 없는 이는 돈으로 대신했다. 

그런 상부상조는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미덕은 사라지고, 금전만 남았다.

그것은 사회성의 지표로 변질해 사회와 개인을 좀먹었다.

예식장에 가면 화환이나 하객으로, 장례식장에 가면 조화 개수나 문상객으로 한 인간의 사회적 성공 지표로 삼았다.

아무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면 이런 제도는 유지하기 어렵다.

많은 돈은 지출한 이는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고 싶다.

예를 들면 고위직은 현직에 있을 때 자식에게 혼사를 치르라고 성화이다.

이때가 되면 그것은 하급직원을 부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부조를 안 하면 “사회성이 없어”라고 말하고, 애경사를 잘 챙기면 “ 인간성이 괜찮네”라고 칭찬을 듣는다.

일로 모인 회사에서 업무로 사람을 평가해야 하는데, 상사는 이벤트에 부지런히 눈도장 찍은 이에게 좋은 점수를 준다. 

     

왜 이런 활동에 자원을 허비해야 할까.

백 명의 하객을 모집하려면 백 번 참석해야 한다.

이동하면서 버리는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시대가 될수록 그런 체면치레는 유지하기 힘들다.

앞으로 당신의 마음이 가는 이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현명하다.

     

치인 귤을 그대로 두었더니 물기가 생겨 곰팡이가 핀 적이 있었다. 

그대로 버리기 아까워 상한 부위를 도려내려고 하니, 아내는 과육까지 곰팡이가 퍼졌으므로 먹지 말라고 조언했다.

본전 욕심이 생각날수록 아는 사람을 돈으로 보기에 부패하기 쉽다.

그런 관계는 야금야금 치인 귤처럼 다른 이에게 독소를 내뿜는다.

부조금을 많이 받아 헤어지느니 안 받아도 알콩달콩 잘 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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