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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Oct 21. 2024

너는 너, 나는 나

1조 원.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벌 돈이다.

그는 공장을 다니는 부모에게 “제발 제 돈 좀 써주세요”라고 하소연했다.

그들은 “너한테 언제까지 엎어 달라고 할 수 없지 않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자식이야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지만, 어버이의 길은 따로 있다. 

    

의상 감각이 없는 나를 위해 집사람은 저녁부터 내가 입고 나갈 옷을 깔 맞춤하기 바쁘다.

나는 그냥 편하게 출근하고 싶지만, 그녀는 “당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옷을 입는 거야’라면서 듣기 싫은 잔소리까지 붙였다.

‘나가면 안심이 안 돼!’라는 보호자의 심정은 이해되나, 나는 아내와 결혼했지, 또 다른 엄마와 결혼한 것은 아니다. 

    

우린 남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싶지만, 

모두의 엄마 노릇을 하면 삶이 위태롭다. 

꿩이 새끼를 품으면 솔개의 위험에선 벗어날 수 있으나, 24시간 껴안기만 한다면 꺼병이는 숨이 막혀 죽는다.

맹수의 위협이 사라지면 자유롭게 숲속에 놓아두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것이 좋을까?

사랑이 지나치면 자식을 선의의 채무자로 만들 수 있다.

빛나는 자녀가 아닌 나중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빚의 자녀가 되기 쉽다.

인간은 열 개를 주면 하나는 받고 싶은 것이 어쩌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행동이 반복될수록 알게 모르게 상대편에게 보은을 강요하는 꼴이다.

그런 마음이 커질수록 자칫하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애증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긋고 그 안에서는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고, 넘어가면 그만 받는다고 사양하라.     


아들딸은 부모의 대리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생각이 다 여문 아이를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니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자녀가 이룩한 성공은 그들의 성공일 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출세로 부모에게 보은하는 게 아니다.

자식이 성장하면서 ‘사랑해요’와 같은 따뜻한 말과 웃음으로 미래의 채무까지 다 청산했다.

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바라지 말자.     


관심과 간섭은 구별하자.

관심은 상대방의 마음으로, 간섭은 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꽃이 자라는데 햇볕이 관심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햇볕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꽃이 시름시름 말라만 간다.

비가 필요한 날에 해는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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