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은 가장 화려한 시절에 고개를 꺾는다

by 홍단근

세월이 가면 좋아하는 꽃도 달라지는 걸까.

젊음의 기운이 충만했던 시절, 나는 화려한 목련이 사랑스러웠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라는 구절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모습과 겹쳤다.

커다란 꽃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내 가슴이 시렸다.

반면 동백은 빨간 하이힐을 신은 콧대 높은 아가씨처럼 보여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줄을 서는 산악인을 방영한 적이 있다.

8,000m를 넘는 죽음의 지대는 산소가 희박하다.

그들은 산소통을 휴대하더라도 20시간 안에 내려와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눈에 잡힐듯한 결과에 집착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위험이 닥치기 마련이다.

정상은 잠시 머무를 수 있는데도, 그 자리를 고수하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산과 인생의 정상은 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내려가야 다른 이가 그 자리를 밟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 정상에서 내려올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중년이 된 후 나는 동백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동백은 가장 화려한 겨울에 스스로 고개를 꺾는다.

먹을 것이라곤 눈밖에 없는 계절, 화려한 꽃상여처럼 스스로 떨어져 배고픈 동박새의 친구가 되었다.

겨울은 시련과 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꽃나무는 병아리 발처럼 잔가지만 남기고 휴식기를 갖는다.

꽃피는 계절에는 친구가 많았으나, 시련이 닥치면 모두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배신에 분노하는 등 인간은 시련 속에서 의연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동백은 조용하고 꿋꿋하게 제 심장마저 기꺼이 바쳤다.


화려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핑계로 머문 자리에 낙서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들 눈에는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나, 이는 꽃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날려 거리의 쓰레기가 되는 목련의 마지막과 비슷하다.

반면 동백은 꽃송이 그대로 떨어져 온전히 흙으로 바다로 돌아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별을 준비하는 중년, 그 꽃처럼 자취를 남기지 않는 이가 아름답다.



-마지막 남길 말-

수의에 동백꽃 하나 꽃아주라

저세상 가서도

당신이 기억할 수 있도록

꽃향기로 헤어진 그대를 찾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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