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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r 06. 2023

"엄마 일 그만둘꺼야." 아이에게 말했다.

퇴사의 첫번째 난관이 너 일줄이야...

공무원을 그만두는데 여러가지 난관이 있을꺼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럴줄은 몰랐다. 


아이가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항상 엄마손길을 아쉬워했던 아이가 쌍수들고 엄마의 퇴직선언을 환영할 줄 알았는데, 반대라니. 반대라니!!!




초등 저학년인 아이는 어느순간부터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내가 행정실장이 되었다고 하니 아이가 물었다.

"엄마가 행정실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야?" 


행정실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행정실장이라는 나의 대답에 아이는 몹시도 황홀해했다. 



학교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쉬는 시간에 교실앞으로 나가 담임선생님께 "선생님, 우리 엄마가요. ㅇㅇ초등학교 행정실짱님이예요. 우리엄마가 행정실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예요."라 했단다.

(아하하,, 선생님들은 행정실장을 별로 안 좋아하실텐데...)



아이 돌봄교실에 일이 생겨 갑작스럽게 돌봄이 어려워져 아이를 데리러오라고 돌봄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주셨을때도 "어머님께서도 학교사정 다 아시겠지만~" 하고 말씀하시기에 나중에 아이한테 물어봤더니 돌봄선생님한테도 엄마가 행정실장이라고 말했다 한다. 



친구한테도, 학원선생님한테도 다 말했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엄마가 학교에 계속 나가고, 계속 계속 행정실장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 주무관이 되는것도 별로라고(고등학교는 5급사무관이 행정실장을 하고 6급은 행정계장 호칭을 쓴다.) 자기는 꼭 엄마가 행정실장이었으면 좋겠단다.

행정실에서의 유명세를 이어가기위해 이 일을 계속해야한다니. . . 

나의 퇴직계획에 생긴 큰 차질이 아닐 수 없다.



아이를 낳고 공무원의 혜택을 잔뜩 누려 육아휴직도 하고 친정엄마의 도움도 받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항상 아이양육에 있어서 내가 부족하다고 자책했었다. 

퇴근이 이른 편이긴 했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가 크면서 아팠던 적도 많고 엄마손이 필요할 때도 많았지만 계속 돌봐줄 수 없어서 열이 나고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할 때도 많았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아이옆에 있어주고 싶었는데 이제 아이는 내 손길이 조금 덜 필요한 시기가 되었나보다. 


예전에는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나도 돌봄교실 안가고 집에 일찍 왔으면 좋겠어. 엄마, 나는 왜 방학때도 학교를 가야돼?" 했던 아이에게 "엄마가 돈을 안 벌면 우리가족이 맛있는걸 많이 못 먹어. 네 장난감을 지금보다 반밖에 살 수 없어. 우리가 좋아하는 여행을 쉽게 갈 수 없어."하면서 아이에게 엄마가 일하는 타당성을 세뇌시켰던 것이 너무 찰떡같이 들어맞았나보다.

(나는 가스라이팅의 귀재였던가.)


학원뺑뺑이 안하고, 돌봄교실 안가고, 방학땐 학교 안가고. 

내년부턴 엄마가 옆에 있어주겠다고 얘기해봐야겠다. 

결국 내가 일하고싶었으면 아이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계속 일했을거면서 그만두고싶으니 아이 핑계대며 퇴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좀 별로다.



+ 주말동안 파이어족 작가님들이 쓴 책들을 보았는데 그분들은 하나같이 아이가 없는 (원했든 원치않았든) 딩크족이었다. 아이가 있으면 파이어족은 못 되나보다.ㅠㅠ 나는 파이어족이 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퇴사관련 조언을 얻고자 관련 책을 빌리다보니 파이어족 이야기가 많았다.

노후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파이어족들은 노후를 준비해놓았거나 대비책이 있어서 퇴직하신 분들이 많았다. 나는 너무 대책이 없이 '더이상 이 일을 못하겠어'하는 충동적인(이라기엔 반년 넘게 고민했지만) 결정이었던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았던 주말이었다.

그래도 160일만 더 일하고 그만두겠다는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월요일 새벽이다.


202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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