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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r 06. 2023

공무원을 그만두기 힘들었던 이유

공무원 되기보다 공무원 그만두기가 몇 배는 더 힘들다.

작년 연말 퇴사병이 아주 심하게 날 찾아왔다.


한 달이 넘도록 끙끙 앓다시피 하면서도, 학교로 출근하는 길을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터덜터덜 꾸역꾸역 오고 가면서도 쉽게 의원면직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고 그때 당시엔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 남편의 암묵적 반대

회사원인 남편에게 공무원 아내는 안전한 보험을 들어놓은 것마냥 심신의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 

평생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고, 퇴직 후엔 우리 가정에 일용한 연금을 갖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아내가 갑자기 일을 관두겠다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편은 처음에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는지, "너무 힘들면 그만둬. 내가 여보랑 아이 하나 못 먹여 살리겠어?"하고 별일 아니란 듯이 대꾸했다.


그러다가 내가 정말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

"요즘 우리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나도 이제 앞으로 5년 버틸지 못 버틸지 모르겠어. 그전에 회사에서 나와야 할 수도 있고..."

(네? 갑자기요? 그런 말 없었잖아요. 남편님아.)


그러면서 그다음으로는 설득을 하려고 했다.

"힘들게 공무원 된 건데 너무 아깝지 않겠어? 후회하지 않겠어? 아, 나는 짤릴까봐 항상 불안한데.. 내가 여보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


"내가 힘들게 공무원 된 건데 여보가 왜 아까워? 후회할 수도 있겠지. 후회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여보가 공무원시험 봐서 공무원을 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 남편이 약간의 우울증세가 있어서(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 인상을 푹 쓰고 들어와서는 며칠간 다운되어 있고, 말도 잘 안 했다) 나는 한발 물러서야 했다.


우리는 가정경제를 함께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였고, 나도 남편에게 그런 부담을 주긴 싫어서 퇴직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우선은 참고 다녀보기. 정 힘들면 6개월 후에 휴직하기. 휴직하고 복직할 때까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그때 가서 관두기. 이게 그 당시 우리 부부가 정한 결론이었다.



2. 내 마음의 허영심과 허세

일은 너무 관두고 싶었으면서도 남들 눈에 보이는 내 직업이 공무원인건 너무 좋았었나 보다. 

특히나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만나게 된 지인들이 내가 하는 일을 알게 되고 부럽다고 말해주는 게, 아닌척해도 어깨가 으쓱했던 것 같다.

주변에 전업맘들이 어느 정도 아이가 크면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경력단절에 아쉬움을 갖고 구직활동을 시작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 스스로 우쭐했었다. 안으로는 너무 힘들고 마냥 좋은 직업이 아닌데 밖에서 보기엔 안정되고 좋아 보이는 직업. 내가 그 시선을 즐긴 것은 아니었을까. 



3. 안정적인 직장과 연금

이건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들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조건이기에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4. 가장 중요한 이유. 그만두고 뭐 하지?

사실 이 이유가 가장 컸고, 이 생각 때문에 작년에 처음 진지하게 퇴직 고민을 하면서도 관두지 못했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게 있었거나 꿈이 있었거나 잘하는 게 있었다면 난 아마 그때 그만두었을 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지?'

'내가 뭐 할 때 제일 행복하지?'

'내가 뭘 잘하지?'

세상에. 내가 43살인데. 이런 생각도 해보지 않고 이 나이까지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43살씩이나 먹고서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뭐 할 때 행복한지를 모를 수가 있지?

충격이었다.


꿈이 없어서 취업준비도 하지 않고 대학생활하다가 회사 들어갈 엄두가 안 나서 백수기간을 유예해볼까 하고 공무원 공부를 시작해서 2년 2개월을 공시생으로 살다가 운 좋게 시험하나 붙어서 공무원이 되었다.


어딜 가서도 일을 잘했고, 능력을 인정받고,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난 그저 인정욕구가 심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건데, 그런 감정에 속아 내가 이 일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현타가 왔다. 부끄러웠다.

20대 때 해야 할 고민을 43살에야 하게 되었다.

10년 넘게 철밥통을 끌어안고 살면서 정말 아무 고민 없이 주어진 일만 하면서 살아온 내 삶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러면서 아이에게는 '니 꿈을 찾아. 네가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고 조언했던가.


그때 내가 그 세 가지 질문에 하나라도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작년에 의원면직을 해서 퇴직자가 되었겠지만 꿈 없이 살아온 43살은 꿈도 없는 주제에 일을 그만둘 수 없어서 아직도 이렇게 행정실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 새벽 1시 반인 거 실화냐..-_-;;;)


그 이후에 적극적으로, 또 치열하게 '나'에 대해 고민을 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을 찾아가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나면 조금 더 새로운 경험들을 해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찾아볼 생각이다.  



202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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